2016 부산비엔날레 -Project 1-

2016.09.28(수)

부산시립미술관



-Project 1-

an/other avant-garde china-japan-korea


Project 1은 한·중·일 3개국, 5명의 큐레이터들에 의해 ‘an/other avant-garde china-japan-korea’라는 주제로 부산시립미술관에서 60~80년대의 한국, 중국, 일본의 자생적 실험미술인 아방가르드를 조망하는 전시이다. ‘an/other avant-garde china-japan-korea’에서 ‘an’은 아방가르드의 전위 정신은 하나일 수 있다는 의미이며, ‘other’는 전위정신은 하나일 수 있으나, 한·중·일 3개국의 예술이 당시에 처한 상황과 형식은 저마다 다름을 의미한다.


중국 <1976-1995년 중국 아방가르드 미술>

1976 중국의 문화대혁명이 막을 내렸다. 문화대혁명의 그늘에서 벗어난 중국은 역사적, 정치적으로 커다란 변동을 겪게되었고 중국현대미술 또한 새로운 정의를 내리고 출발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1949년부터 1976년까지 중국의 미술은 정치(우상) 목적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도맡아왔다. 그러나 1976년부터의포스트-광장시대의 미술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중국의 아방가르드미술은 어떤식으로 구축되고 진행하였나?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작가로서 개인의 심경변화를 어떻게 표현하였나? 작가들은 다양한 철학적 사고와 사회-문화적 이상을 어떤식으로 작품에 표출했나? 이와 같은 질문들은 지난 30여년간의 중국현대미술 관련 전시와 토론을 토대로 2009 이후부터 많은 미술전문가들에 의해 다양한 견해와 결론을 도출해오고 있다.


일본 <전후 일본의 전위미술>

일본의 전위미술은 유럽보다 조금 늦은 시기인 제1차 세계대전 직후에 당시의 도항자들에 의해 처음으로 소개되었다. 그 후 1930년대에는 이미 절정에 이르렀고,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추상미술이 그 중심에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은 일본 국내에서 군부가 힘을 얻고, 미술 역시 국책에 협력하는 부속적인 기능으로 바뀌게 되자, 급속히 쇠퇴하여 1940년 전반에는 거의 그 모습을 감추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일본의 전위는 이미 한 번 사멸되었던 것이다. 일본 미술계에 다시 한번 전위가 부활하게 된 것은, 전쟁이 끝난 후 과거를 청산하지 않고 각자 이전의 양식으로 돌아가려고 했던 일본 화단에 도전장을 던진 오카모토 타로에 의해서였다. 그러나 오카모토가 주장한 전위는 총체가 아닌 「부정」에 그 기반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생각에 동참하는 추종자들은 전위를 「남의 흉내를 내지 않는 」 혹은 「남과 다른 것을 하는」 행위로 해석하였다. 1950년대부터 1960년대에 걸쳐 등장한 동향들은 전위라기보다는 자기부정적인 급진주의에 가까웠던 것은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동시에 이 급진주의가 의지하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반발할 수밖에 없던 그 대상은 전후 일본의 고도 경제성장이었고, 그 상징이 되는 것이 1964년에 열린 동경 올림픽과 1970년에 오사카에서 개최된 만국박람회였다. 국책에 의해 주도되었던 이런 큰 축제가 끝나고, 적대시하던 대상이 사라짐과 동시에 고도 경제성장에 그늘이 드리워지자, 1970년대 이후 일본의 전위는 급진주의에서 벗어나 니힐리즘에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게다가 경제를 움직이는 메커니즘이 생산에서 소비로 이행한 1980년대 이후에는 그 실체를 잃고 거품화되어버리고 만 일본 경제에 대응이라도 하듯, 이전과 같은 새로움을 추구하지 않고 기시감에 가득 찬 서브컬처를 시뮬레이션하는 포스트 전위가 등장하였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의 기원이 되는 것은 패전이라는 역사상의 망각점이었으며, 그것을 상징하는 것은 두말할 것 없이「일본 헌법」과「피폭지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임에 틀림없다.


한국 <한국의 전위예술: 불온한 탈주(脫走)>

1960년대 말부터 1980년대 말까지의 20년간을 대상기간으로 삼아 기성제도권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제도를 넘어서기 위해 전위적이며 실험적인 작업을 추구해온 작가들을 조명코자 하였다. 이 시기는 단색화와 민중미술, 형식주의 모더니즘과 사회적 리얼리즘이라는 거대담론이 주류를 이루던 시기였다. 이번전시는 거대담론 양자 사이 중간지대에서 새로운 언어를 찾기 위해 노력한 작가군들과 활동들에 초점을 맞추었다. 단색화의 경우 내용보다는 모더니즘의 형식주의적 속성이 강하고, 민중미술의 경우 양식보다는 담고 있는 내용이 강세를 보였던 점을 감안할 때, 형식과 내용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으며 양자의 경계지점에서 그 상관성을 고민했던 작가들의 대표적인 작품을 선보이고자 했다.






왕광이, <검은 이성 -  병리분석>

캔버스에 유채, 75x85cm, 1987 

© Wang Guangyi Studio


85신조 북방예술그룹의 멤버로 90년대 정치 팝을 대표하는 작가인 왕광이 저장미술대학 재학당시 서양의 고전미술과 철학에 심취했다. 이는 그의 작품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가려진 고전의 정신을 차갑고 엄숙한 방식을 통해 화폭에 담았다. 1980년대 냉전시대의 종료와 중국 사회의 변화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이 이상향으로 생각했던 정치와 문화에 대한 의구심을 갖게 되었다. 「퀵드라이 공업페인트로 덮은 명화」와 「퀵드라이 공업페인트로 덮은 명곡」은 이러한 의구심을 바탕으로 작업한 것으로 인문과 이상에 대한 열정이 산업과 자본에 덮여 보이지 않게 되는 것에 대한 불안함을 드러낸다. 왕광이정치 팝의 대표시리즈인 <대비판> 문화혁명시기 군중들의 대비판관련 홍보포스터와 국제적으로 유행하는 브랜드를 함께 배치하여 자본주의적 풍조에 물든 중국의 이미지를 표현한다. 이는 민감한 정치경제적 부분을 위트있게 건드리고 발상을 전환하는 뒤샹식 표현이기도 하다.




스즈키 요시노리, <뒤짚힌 형상의 존재하지 않는 그림>

캔버스에 유채, 나무, 60×67.7c, 1967

© BUSAN BIENNALE


1936 시즈오카현 시미즈시에서 태어난 스즈키 미술비평가 이시코 준조로부터 영향을 받아 1966년에 시즈오카에서 결성된 그룹 「겐쇼쿠 (환촉) 」의 일원이었다. 스즈키 미술사를 대표하는「명화」의 이미지를 자신의 작업을 위해 자유자재로 편집하고 소비 할수있는 데이터 베이스로써 사용하였다. 또한 회화라고 해도 물체로서는 3차원적인 성질을 갖기 때문에 겉과 뒤가 있을 있다는 것을 실제의 작품을 통해 구체적으로 제시하였다. 겐쇼쿠의 역사적 의미가「Pre-모노하」의 역할에 그치지 않는 것은 스즈키 이러한 활동들이 제시한 가능성을 통해 증명될 것이며, 오늘날 다시 한번 빛을 비춰볼 필요가 있다.




홍명섭, <De-veloping/en-velopiong; the wall>

종이, 접착제, 가변크기, 1978

© BUSAN BIENNALE


홍명섭은 《면벽전》(문화원화랑, 1978) 등 28회의 개인전을 가졌다. 그는 초기부터 매스와 규정된 공간을 전제로 한 기존의 조각개념을 넘어서는 이질적 맥락의 조형작업에 몰두하며, 규정된 작업보다는 진행되어가는, 규정할 수 없는 새로운 영역의 작업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는 자신의 작업을 관통하는 'shadowless', 'artless', 'mindless' 등의 개념을 설정하고 기존의 예술관념을 넘어서는 어법을 극단적으로 실험한다. 출품된 <De-veloping/ in-veloping ; level casting>,<Will & unwill gesture ; Water•fall> 역시 이러한 맥락의 작업들로 80년대 중반 이후 기존의 형식주의 모더니즘으로부터 전혀 이질적인 어법으로 지속적인 탈주를 감행하고 있다.




이승택, <종이 나무>

생나무 가지종이가변크기, 1970

© BUSAN BIENNALE


이승택의 선구적인 실험작업들은 1960~70년대 한국 미술계에서 가장 독보적인 전위적 위상을 점하고 있다. ‘반개념’과 ‘비조각’을 주요한 창작이념으로 하고 있는 이승택의 초기작업은 바람, 물, 불 등의 비정형적 재료들을 활용하거나 돌과 같은 정형적 재료를 사용하더라도 물성을 탈각시켜내고 있다. 또한 그의 독특한 작업방식은 샤머니즘과 같은 전통적 소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내거나 일상을 차용해내는 방식을 구사하며 ‘형태보다는 상태’를 창조해 내고 있다. <바람-민속놀이>, <하천에 떠내려가는 불붙은 화판>, <종이나무>, <묶은 돌>등은 그의 초기 대표작이다. <목구(木口)놀이>등과 같이 자연이나 일상의 상황을 자신의 작업 속에 차용하는 ‘개입’의 개념 역시 전통 조형개념인 ‘차경 借景, appropriative landscape’의 현대적 변용으로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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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OYOUN SK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