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를 피에르 보들레르 (프랑스)

시|문학동네|2015

*Le Spleen de Paris

★★★★☆




4. 장난꾸러기

그것은 새해의 폭발이었다. 무수한 사륜마차가 가로지르고, 장난감과 봉봉과자가 번쩍거리고, 탐욕과 절망이 들끓는 진흙과 눈의 혼돈, 가장 완강한 고독자의 뇌수마저 어지럽히려고 마련된 대도시의 공인된 착란.

이 소동과 난장판의 한가운데서, 나귀 한 마리가 채찍으로 무장한 어느 무뢰한에게 시달리며 굳세게 종종걸음을 치고 있었다.

나귀가 보도의 모퉁이를 막 돌려 할 때, 장갑이 끼워지고 에나멜 칠로 번들거리고, 넥타이로 끔찍하게 목이 조여, 완전 신품 양복 속에 감금당한 멋쟁이 신사 하나가 이 누추한 짐승 앞에 정중하게 절을 하고는, 모자를 벗어들고 말했다. "아름답고 복된 새해를 기원합니다!" 그러고는 내 알 바 없는 떨거지들 쪽으로 득의만만하게 고개를 돌렸다. 제 만족감에 그들이 칭찬이라도 얹어주기를 앙망하는 듯이.

나귀는 이 멋쟁이 장난꾸러기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으며, 그래서 제 의무가 부르는 곳으로 계속해서 열심히 달려갔다.

나로 말하자면, 프랑스의 모든 재기를 고스란히 한몸에 끌어모은 것만 같았던 이 으리으리한 바보를 보며 측량할 수 없는 분노에 돌연 사로잡혔다.



5. 이중의 방

몽상을 닮은 방, 거기 고여 있는 공기가 장밋빛과 푸른빛으로 살포시 물들어 있는, 진정으로 정신적인 방.

혼은 거기에서 회한과 욕망의 향기에 젖어, 게으름의 목욕을 한다 ― 그것은 황혼의 박명처럼 어슴푸레한, 푸르스름한가 하면 장밋빛인 어떤 것, 일식중에 꾸는 한 자락 관능의 꿈.

가구들은 기름하고, 허탈하고, 나른한 형태를 지녔다. 가구들은 꿈꾸고 있는 모습이다. 식물이나 광물처럼, 마치 몽유(夢遊)의 생명이라도 얻은 것 같다. 직물들은 소리 없는 말을 한다, 꽃처럼, 하늘처럼, 저무는 해처럼.

벽에 예술에 대한 오욕은 아무것도 없다. 순수한 꿈, 분석을 마다하는 인상에 비하면, 규정된 예술, 명징한 예술은 모독이다. 여기서는 모든 것이 조화로움의 바탕인 충분한 빛과 그윽한 어둠을 지녔다.

지극히 섬세하게 골라낸 미세한 향기가 아주 가벼운 습기를 머금고 이 공기 속에 떠돌고, 그 안에서 졸고 있는 정신은 온실의 감각에 실려 흔들거린다.

모슬린이 창 앞과 침대 앞에 풍성하게 빗줄기를 이루고, 백설의 폭포인 양 쏟아져내린다. 이 침대 위에 꿈의 여왕, 우상이 누워 있다. 그런데 어떻게 그녀가 여기에 있는가? 누가 그녀를 데려왔는가? 어떤 마법의 힘이 이 몽상과 관능의 옥좌에 그녀를 올려놓았는가? 아무렴 어떠냐? 그녀가 바로 거기 있다! 내가 그녀를 알아본다.

저것이 바로 불꽃으로 어스름 빛을 꿰뚫는 그 두 눈, 그 소름끼치는 악의 때문에 내가 알아보는 그 예리하고 무서운 거울눈이 아닌가! 그것들은 섣불리 자기들을 응시하는 경솔한 인간의 시선을 유혹하고 지배하고 삼켜버린다. 나는 그것들을 시나브로 연구해왔다. 호기심과 찬탄을 어김없이 불러일으키는 그 두 개의 검을 별을.

어느 친절한 수호령의 덕택으로 내가 이렇게 신비와 고요와 평화와 향기에 둘러싸여 있는 것인가? 오 그지없는 행복이여! 우리가 일반적으로 삶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것이 가장 복되게 확장된 상태에서라 하더라도, 내가 지금 체득하는 삶, 내가 일 분 일 분, 일 초 일 초 맛보고 있는 이 지고한 삶과는 아무런 공통점도 없다!

아니다! 이제 분은 없다, 이제 초는 없다! 시간은 사라졌다. 군림하는 것은 영원, 열락(悅樂)의 영원이다!

그러나 한 차레 무섭고 무거운 타격이 문을 울렸다. 지옥의 악몽에서처럼, 나는 곡괭이로 위장을 한 대 얻어맞은 것만 같았다.

그러고는 유령이 하나 들어왔다. 그것은 법의 이름으로 나를 문책하러 온 집달리, 또는 가난을 하소연하며 내 생활의 고통에 자기 생활의 비속함을 덧붙이러 온 염치없는 정부(情婦), 또는 후속 원고를 재촉하러 보낸 신문사 편집장의 사환 아이다.

천국의 방도, 우상, 그 꿈의 여왕, 저 위대한 르네가 말했다시피 실피드도, 그 모든 마법이 난폭하게 휘두른 유령의 일격에 사라져 버렸다.

무서워라! 생각난다! 생각난다! 그렇지! 이 누추한 방, 이 영원한 권태의 거처, 이것이 바로 내 방이지. 보라, 먼지 끼고 귀 떨어진 멍텅구리 가구들, 불꽃도 잉걸도 없이 가래침에 더럽혀진 벽난로, 빗줄기가 먼지 속에 고랑을 내놓은 쓸쓸한 창, 쓰다가 지웠거나 쓰다 만 원고, 불길한 날짜들을 연필로 표시해놓은 달력!

그리고 완벽하게 세련된 감수성으로 내가 도취하였던 또다른 세계의 그 향기는, 슬프다! 이제 무언지 모를 구역질나는 곰팡내와 뒤섞인, 역겨운 담배 냄새로 바뀌었다. 이제 여기에서는 비탄의 쉰내를 맡는다.

이 좁은, 그러나 혐오감 가득한 세계에서, 단 한 가지 낯익은 물건이 내게 미소를 짓는다. 아편팅크 유리병 하나, 오래되고도 무서운 여자친구, 여느 여자친구나 마찬가지로, 슬프다! 애무도 풍요롭고 배신도 풍요로운.

오! 그렇구나! 시간이 다시 나타났구나. 시간은 이제 절대군주로 군림한다. 그리고 이 흉측한 늙은이와 더불어, 그를 수행하는 추억, 회한, 경련, 공포, 고뇌, 악몽, 분노, 그리고 신경증, 그 악귀 같은 행렬이 고스란히 되돌아왔다.

당신에게 확실히 말해두거니와 일 초 일 초는 이제 힘차고 엄숙하게 강조되고, 매초마다 추시계에서 솟아오르면서 말한다 ― "내가 바로 삶이다, 그 견딜 수 없는, 그 달랠 길 없는 삶!"

인간의 삶에서 복음을 알리는 사명을 지닌 것으로는 오직 하나의 초가 있을 뿐이다. 어느 누구에게나 설명할 수 없는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는 그 복음.

그렇다! 시간이 군림한다. 놈이 그 포학한 전제권력을 다시 탈환했다. 그러고는 두 개의 바늘로, 내가 마치 황소라도 되는 양, 나를 몰아댄다 ― "이랴 낄낄! 이 짐승아! 땀 흘려라 그래, 이 노예야! 살아라 그래, 영벌받은 놈아!"



14. 늙은 곡예사

(전략) 모두가 빛이고 먼지이고 고함이고 기쁨이고 법석일 뿐이었다. 이쪽은 돈을 쓰고 저쪽은 돈을 벌고, 이쪽과 저쪽이 똑같이 즐거웠다. 아이들은 막대사탕을 얻기 위해 어머니의 치맛자락에 매달리거나, 신처럼 눈부신 요술쟁이를 더 잘 구경하려고 아버지의 어깨에 올라타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모든 향기를 지배하며, 어디에나 떠돌고 있는 튀김 냄새는 이 축제의 훈향과도 같았다.

그 끄트머리에, 바라크의 대열 맨 끝에, 마치 부끄러워서 이 모든 찬란함으로부터 자신을 추방해버리기라도 한 것 처럼, 가련한 곡예사 하나가, 허리가 굽고 시들고 늙어빠진 인간의 폐허 하나가, 자기 오두막의 말뚝 기둥 하나에 등을 기대고 있는 것을 나는 보았다. 가장 몽매한 야만인의 오두막보다도 더 비참한 오두막 하나, 그 궁핍을 두 도막의 촛불이, 촛농을 흘리고 연기를 피우면서, 너무나도 환히 밝히고 있었다.

어디에나 기쁨과 돈벌이와 낭비, 어디에나 내일을 위한 빵의 보장, 어디에나 생명력의 열광적인 폭발, 여기에는 절대적인 빈곤, 끔찍함을 한 꺼풀 덧씌우기 위해, 희극적인 누더기를 괴상하게 걸친 빈곤, 그 결핍이 예술적 기교보다도 훨씬 더 효과적으로 대조를 도입하고 있었다. 그는 웃지 않았다. 이 불쌍한 사내는! 울지 않았다, 춤추지 않았다, 몸짓을 하지 않았다,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즐거운 노래도 슬픈 노래도, 아무런 노래도 부르지 않았다, 애걸하지 않았다. 그는 침묵하고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단념했다, 포기했다. 그의 운명은 끝났다.

그러나 얼마나 깊고 잊지 못할 시선을 그는 군중과 불빛 위에 던지고 있었던가! 그 움직이는 파도가 그의 메스꺼운 빈곤의 몇 걸음 앞에서 멈춰버리곤 했다. 나는 히스테리의 무서운 손아귀에 목이 졸리는 느낌이었고, 떨어지기를 원치 않는 저 성가신 눈물로 눈앞이 흐려지는 것만 같았다.

어떻게 해야 하나? 그 불우한 사나이에게, 어떤 신기한 것을, 어떤 기적을, 그 악취 풍기는 어둠 속에서, 그 찢어진 커튼 뒤에서 보여줄 것인지 물어본들 무슨 소용인가? 사실을 말한다면, 나는 그럴 엄두를 내지 못했으며, 내가 그렇게 소심했던 이유를 듣고 여러분은 웃을지도 모르나, 내 질문이 그를 모욕하게 될까봐 두려웠다고 고백해야겠다. 결국 나는 그가 내 뜻을 알아주길 기대하면서, 지나는 길에 얼마큼의 돈을 그의 널빤지 가운데 하나 위에 놓아두려고 마음먹던 차에, 무언지 모를 혼란으로 야기된 인파의 거대한 썰물이 그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으로 나를 휩쓸어가버렸다.

그래서 집에 돌아가면서도, 그 광경이 머리를 떠나지 않아, 내가 느낀 그 갑작스러운 고통을 분석해보려고 애를 쓰다가 이내 나는 생각했다. 내가 방금 본 것은 일찍이 자신이 찬연한 인기를 누리며 즐거움을 안겨주었던 세대보다 더 오래 살아남은 늙은 문인의 영상, 친구도 없고, 가족도 없고, 자식도 없는, 자신의 빈곤과 대중의 배은망덕으로 퇴락하여, 잊기 잘하는 세상 사람들이 이제 그 바라크에도 들어가려 하지 않는 늙은 시인의 영상이었구나!



42. 애인들의 초상(肖像)

(전략) "내 경우는 말일세," 네번째 사나이가 하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여성들의 자기중심주의의 탓으로 여기는 그런 사태가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의 사태로 가혹한 고통을 겪어야 했네. 자네들처럼 너무나 행복한 인간들이 자기네 여자들의 결점을 한탄하다니, 내가 보기엔 그럴 계제가 아니야!"

매우 진지한 어조로 그 말을 한 사람은 온화하고 사려 깊은 모습에 거의 수도승과 같은 얼굴이었는데, 불행하게도 그 얼굴이 맑은 회색 눈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 눈초리가 "나는 바란다!"거나 "그래야만 된다!"거나 "나는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그런 눈.

"신경질적인 것은 나도 알 만한 자네 G...도, 그만큼 소심하고 경박한 자네 두 사람 K...와 J...도 만일 내가 알았던 그 여자와 짝이 되었더라면, 달아나거나 죽어버렸을 거야. 그런데 나는 자네들이 보다시피 살아남았지. 감정에서나 계산에서나 단 한번의 잘못도 저지를 수 없는 그런 인간을 머릿속에 그려보시게. 안쓰럽도록 평온한 성격, 연극투도 과장도 없는 헌신, 연약함이 없는 부드러움, 격하지 않은 정력을 그려보시게. 내 사랑의 역사는 거울처럼 맑고 매끄러운 수면 위로 끝날 줄 모르고 떠가는 항해를 닮았으려니와, 현기증이 나는 그 단조로운 수면은 내 모든 감정과 행동거지를 마치 내 자신의 의식처럼 빈정거리듯 정확하게 비추기 마련이었으니, 나는 한 번이라도 이치에 어긋나는 행동거지나 감정에 몸을 맡겼다가는 그 즉시 저 떨쳐버리지 못할 유령의 말없는 비난을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네. 사랑은 나에게 후견을 받는 일만 같았다네. 얼마나 많은 어리석은 짓을 하지 못하도록 그 여자는 방해하였던가, 내가 저지르지 못해 애석한 짓을! 얼마나 많은 빚을 마음에도 없이 갚았던가! 내 이기적인 막무가내 짓에서 끌어낼 수도 있었을 이득을 그 여자는 나한테서 모조리 빼앗아버렸지. 냉혹하고 범할 수 없는 규율로 여자는 내 변덕을 모조리 막아버렸지. 무서움에 무서움을 덮친 격으로, 그 여자는 위험이 사라진 뒤에도 감사의 인사를 요구하지 않았어. 나는 얼마나 여러 번, 그 여자의 목덜미에 달려들어 소리지르고 싶은 충동을 참았겠는가. '제발 좀 불완전해라, 이 몹쓸 것아! 불안도 분노도 없이 너를 사랑할 수 있도록!' 여러 해 동안, 나는 그 여자를 찬미해왔어, 가슴에는 증오를 가득 품고. 결국 그 때문에 죽은 건 내가 아니야!"

"저런!" 다른 사내들이 말했다. "그럼 그 여자가 죽었다는 건가?"

"그렇다네! 그대로는 지속될 수 없었지. 사랑은 나에게 지긋지긋한 악몽이 되고 말았어. 정치가 말하듯이, 타도냐 죽음이냐, 이것이야말로 운명이 나에게 떠안긴 양자택일이었지! 어느 날 저녁 숲속에서... 어느 늪가에서... 그 여자의 눈에는 하늘의 다사로운 빛이 비치고, 내 가슴은 지옥처럼 오그라들던, 그 우울한 산책 뒤에..."

"뭐라고!"

"어찌 그런!"

"무슨 말을 하는 건가?"

"피할 수 없는 일이었지. 탓할 데 없는 시종을 후려치거나 야단치거나 쫓아내기에는 내가 품은 공정심이 너무 많다네. 그러나 이 공정심을 그 여자가 내 마음속에 빚어준 공포심과 일치시켜야만 했지. 그 존재를 나에게 치워버리면서도 그에 대한 존경심을 잃지 않아야 했단 말이지. 내가 그 여자를 어떻게 했어야 하겠는가, 그 여자는 완전무결했는데."

다른 세 친구들은 흐릿하고 약간 어리벙벙한 시선으로 그 사내를 바라보았다, 이해가 가지 않는 척하려는 듯이, 그리고 또 아무리 충분히 설명을 해주어도, 자기들이라면 그토록 매몰찬 행동은 불가능할 것 같은 느낌이라고 암암리에 고백하려는 듯이.

이어서 그들은 새로 술병을 가져오게 하였다. 그다지도 생명이 질긴 시간을 죽이고, 그다지도 느리게 흐르는 삶을 재촉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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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OYOUN SK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