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우어 드라이스마 (네덜란드)

심리|에코리브르|2015

*Vergeetboek

★★★




망각을 표현하는 은유는 흔히 기억을 표현하는 은유를 힘겹게 뒤집은 것에 불과할 경우가 많다. 요컨대 만약 우리가 뭔가를 잊어버렸다면 잉크가 말라버린 것이고, 양피지에서 내용이 지워진 것이고, 누군가가 컴퓨터 자판의 'delete'를 눌렀거나 정보가 하드 디스크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망각은 '지우다', '삭제하다' 혹은 '사라지다'와 결코 다르지 않다. -13p



01 망각으로 씻어낸 최초의 기억

어린 아이들의 경우는 개인의 과거에 관한 이야기를 종합할 수 있는 '나' 또는 '스스로'라는 개념이 전혀 없다. '나'가 없는 한 자서전을 만들 수 없다 ― 그 대신 서로 연결되지 않는 단편적인 사건만 있을 뿐이다. 우리가 '망각'이라고 부르는 것은 누구에게도 요구받지 못한 기억의 상실이다. '내가 체험하는'이라는 걸 의식하는 아이만이 지속적인 기억을 비축한다. -40p


진화는 기억을 위해 다른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멋진 계획 덕분에 우리는 덜 불편해지며, 그리하여 다른 것보다 우선시하는 목록을 자체적으로 갖게 되었다. 기억은 우리에게 불쾌감을 덜어줌으로써 스스로 우선시하는 게 있다. …이 모든 것은 우리를 위해서다. 기억은 기억을 보유하는 자가 아니라 창조한 자의 말을 듣는다. -54p



08 억압에 관하여

어떻게 정의를 내리든 억압은 근거 있는 망각, 정신 작용에 의한 건망증, 분열 혹은 선별적 망각이라는 개념과 겹친다. 이러한 개념은 모두 각기 비슷한 은유와 연결된다. 가령 기억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차단, 분열, 추방, 절단, 억압, 매장, 은닉이라는 표현으로 설명할 때 그렇다. 또한 억악에 관한 거의 모든 정의에는 트라우마와 무의식이라는 개념이 따라온다. 이런 개념을 정의하고자 하는 시도는 결국 원을 돌고 도는 묘사에 그친다. 가령 '무의식이란 정신의 일부로서 트라우마적 기억에서 억압하게 되는 것'이라든가 혹은 '억압이란 트라우마적 기억을 차단하는 것이다'라는 정의처럼 말이다. 따라서 억압이란 불분명한 명칭이며, 적어도 두 가지 불분명한 생각 사이에서 긴장 관계에 있는 개념이다. -188p


도라가 치료받기 전해에 프로이트는 《꿈의 해석》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꿈이란 여러 길 가운데 하나를 묘사해준다. 그러니까 어떻게 정신적 재료가 의식에 닿을 수 있는지, 저항을 통해 어떤 것을 의식으로부터 차단하고 억압하고 이로써 병적으로 될 수 있는지 말이다. 간략하게 말해, 꿈은 '억압에 접근하는 우회로' 가운데 하나다" -194p


재발견된 기억을 연구할 때 사람들은 흔히 남아 있는 재료로 재구성할 수 있는 것에서 시작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내려 했다. 위에 언급한 분석은 이른바 '다른 측면'에서 시작한다. 즉 부담되거나 트라우마에 속하는 사건에 대한 기록을 갖고 있는 상태에서 그런 사건을 기억하는지 혹은 잊었는지 조사한다. 그러면 다음과 같은 결과가 나온다. 요컨대 상세한 것이 기억에서 사라지거나 점차 기억에 모순이 생기기 때문에 '망각'이 나타나며, 이는 억압이나 분열과 무관할 수 있다. 트라우마가 기억으로 처리하는 것은 억압이라기보다 기억의 복귀다. -218p


EMDR(Eye Movement Desensitization and Reprocessing)에 관한 책은 '망각의 기술'에 대한 내용을 서술하고 있는 게 아니라고 강조한다. 기억은 지워지거나 줄어드는 게 아니라 다만 새롭게 저장되며, 이때 부정적 감정이 사라진 채로 저장된다고 한다. 기억으로 되돌아오는 것은 더 이상 재체험이나 악몽의 형태를 띤 기억이 아니라는 뜻이다. 트라우마 사건 자체는 망각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망각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EMDR 사례집》에서 소개한 환자들이 치료를 받은 뒤 자신의 기억을 서술할 때 사용한 은유는 기억이라기보다 망각에 더 적합하다. 사라짐, 제거 그리고 색이 바랜다는 표현은 망각의 언어에 속한다. 환자들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기억을 망각한다. 이런 추측은 맞다. 자서전의 경우 기억은 그야말로 순수한 정보가 아니다. 이런 기억 속에는 자서전을 쓰는 사람의 감정적 의미, 기억을 불러일으킨 연상 그리고 기억의 색깔이나 느낌이라고 명명할 수 있는 모든 게 녹아 있다. 만일 EMDR 치료법이 이 모든 것을 제거한다면, 기억은 '망각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다. 어쨌든 기억의 원래 형태는 사라지거나 더이상 접근하지 못하고, 따라서 이런 의미에서 망각된다고 말할 수 있다. EMDR가 결코 망각의 기술이어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은 기억이 갖고 있는 요소인 망각을 부인하는 셈이다. -225p



09 절대적 기억의 신화

1982년 피에르 글로어Pierre Gloor와 4명의 동료 신경학자는 간질에 걸린 뇌를 대상으로 일련의 실험을 수행했다. 이 실험 역시 몬트리올 신경학연구소에서 이뤄졌으나 약간 다른 기술을 사용했다. 측두엽 간질을 앓고 있는 환자 29명의 뇌 깊숙한 곳에 전극을 장착했다.

…상황은 강렬함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았다. 어떤 경우에도 지각은 하나의 장면, 하나의 느슨한 그림 이상으로 나타나지 않았다. 연구자들은 이를 시간의 연속성이 없는 '스냅 사진'으로 분류했다. 이런 종류는 분명 인상을 전달해주지는 않으며, 다 돌아간 녹음기의 일부였다. 모든 지각은 변연계에 있는 구조물을 자극함으로써 일어났으며, 측두엽의 표면을 자극하는 것은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이와 같은 소견으로 말미암아 연구소를 설립했던 사람들이 수집해둔 보도 자료는 새롭게 해석되었다. 원래 지각을 담당하는 무위는 확률적으로 보면 확실히 변연계에 있었다. 유인을 하든 즉흥적이든 이 부위에 방전을 하면 데자뷔 체험, 꿈같은 상태와 회상이 일어났다. 그런데 펜필드는 표면에 전극을 접촉함으로써 소규모 발작을 불러일으켰고, 이것이 뇌 깊숙한 곳에 있던 구조를 무질서하게 만들었을 가능성이 있다. 편도핵과 해마의 활성화는 특이한 시간 이동을 초래했고, 그리하여 익숙하다는 느낌을 주었다. 이로 인해 모든 경험 그리고 환각과 환상이 기억이라는 특징을 갖게 되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이 발작을 일으키는 동안 예전에 한 번도 가본적 없는 장소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으로도 마치 그런 기억을 하는 듯한 느낌을 가졌다. 뇌에서 일어나는 발작의 경우에는 대부분 백일몽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비슷하다. 즉 번개처럼 빨리 그때그때의 감정에 적합한 장면이 조립된다. 그리고 이런 장면에서 나타나는 것은 그 순간에 환상과 기억의 조각들로부터 어떤 것을 붙드느냐에 달려 있다. -253p


학문 안팎에서 그토록 많은 사람이 기억은 모든 것을 붙잡고 있다는 점을 믿었고 지금도 믿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체험한 것 대부분은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진다는 생각을 받아들이는 게 얼마나 힘든지 보여준다. 만일 기억이 뭔가를 걸러주는 체라고 한다면, 그래서 가루와 먼지가 다 빠져나가고 정말 소중한 것들만 체에 걸러진다고 확신할 수 있다면 사람들은 마음의 평화를 찾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우리의 뇌는 그렇지 않다. 1982년 4월 12일 집으로 가던 길에 본 반대 차선의 교통 상황은 더 이상 우리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한때 아버지와 나눴던 대화, 어머니가 만들어주었던 맛있는 쇠꼬리 스프, 세 살 난 딸아이와 했던 산책도 마찬가지다. 절대적 기억이라는 신화는 당장은 불러낼 수 없으나 그 어떤 것도 정말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위안을 얻어야 한다. 고대 그리스 시대의 관념인 '텅 빈 것에 대한 두려움horror vacui'과 관련해 17세기 물리학은 의인화를 첨가했으나, 심리학에서는 여전히 뇌에 대한 믿음으로 남아 있다. 즉 텅 빈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오늘날의 심리학에서는 뇌가 모든 것을 기록하고 아무것도 망각하지 않는다는 믿음이 여전히 남아 있다. -258p



10 에스테르하지의 기억

이와 같은 불행이 나타난 역사연구소를 대하는 에스테르하지를 보면, 인간의 기억과 기록보관실은 전통적인 역할에 상응하는 것 같다. 즉 페테르의 기억은 교정이 가능했다. 페테르의 기억은 색깔, 감정, 취향, 의미가 변했고 이제는 기록보관실에 스파이 문서가 온전히 보관되어 있을 때와는 다른 과거를 지시했다. 이와 반대로 이 문서들은 예전 그대로이며, 에스테르하지가 처음 방문했을 때 탁자 위에 놓여 있었듯 다시금 기록보관실로 돌아갔다. 기록과 기억 사이의 차이는 너무나 커서 문서실 전문 관리인들은 왜 문서와 기억을 비교하는 게 인기있는지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페테르 에스테르하지를 따라갈 필요는 없다. 사실, 기억과 자료 사이의 경계가 얼마나 불분명한지는 방금 보여주었다시피 《수정본》을 다르게 읽기만 해도 된다. 우선 스파이 문서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부분적으로만 텍스트로 확정되어 있다. …아버지의 보고서를 해석하는 것은 바로 페테르의 기억이다. '차나디'가 열심히 보고했는지, 반대로 억눌린 심정으로 보고했는지 서류 묶음에서 찾아 볼 수 없다. 선거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했는지, 비꼬는 마음이었는지도 알 수 없다. 요컨대 페테르에 의해 유동적으로 변할 수 있다. 따라서 서류 묶음에 들어 있는 모든 보고는 주석, 기억, 해석, 인정, 부인, 해명이라는 틀에 갇혀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아버지의 보고는 아들의 기억에 의존한다. 즉 보고서를 실제로 읽었을 때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바로 아들이라는 얘기다. -275p



11 아무것도 잊어버리지 않는 거울

두 사람은 기억을 두고 논쟁을 벌였지만 무엇보다 차이는 분명하다. 클로데에게 사진은 기억과 관련해 만족감을 주는 듯한데, 마치 우리가 옆에 있는 듯 혹은 거울 앞에 서 있는 듯 보는 얼굴을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반면 레이디 이스트레이크에게 사진은 기억에 봉사하는 게 아니라, 반대로 기억이 사진에 봉사해야 한다. "애정 어린 눈과 아름다운 기억"이 없으면 사진은 다만 정확할 뿐 생명감 없는 거울에 비친 모습이고, 관찰자가 있을 때에야 비로소 사진 안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29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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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OYOUN SK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