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ly, 2016
1. 날씨가 정말 미친 것 같다. 해가 떠있는 한낮에는 기운이 없어서 멍-하니 천장이나 창밖 하늘만 바라보면서 아무것도 하질 않다가 해가 지고 나서야 겨우 미뤄둔 일들을 시작한다. 이대로라면 '이토록 아름다운 세 살' 속 어린 신처럼 나도 파이프가 되어버릴 것 만 같다.
2. 지난 여름 인생에서 처음으로 머리카락을 단발로 싹둑 잘라버린 이후로 여름만 되면 단발 충동에 휩싸인다. 이래서 단발병이 무섭다고들 하는구나. 무더위에 긴 머리를 치렁치렁 늘어뜨리고 다니니 답답해 보이기도 하고, 거추장스럽기도 해서 도저히 참지 못하고 미용실로 달려갔다. 지난번의 중단발 보다 짧게, 어깨에 닿지 않는 길이로 했더니 머리카락을 자른 직후에는 너무 짧게 잘랐나 하고 후회하기도 했는데 살랑이는 바람결에 목덜미를 간지럽히는 머리칼이 기분 좋다. 어차피 머리카락은 기르면 되고 겨울 즈음이면 원래대로의 길이로 돌아갈텐데 뭐.
3. 여름마다 항상 새로운 마음으로 다이어트 겸 체력 증진을 목적으로 수영장을 다니는데 올해도 역시 수영을 배우는 데 실패했다. 언제쯤이면 킥판 없이 물에 뜰 수 있을까. 무엇보다 꾸준히 나가야 하는데 배워나가는 즐거움이 없으니 하루 걸러 하루씩은 빠지게 되고 이후로는 아주 뜸하게 가다가 결국 수영장으로 향하던 발걸음이 멈추게 된다. 수영을 등록하고 처음 배울 때 강사님이 "물 무서워하시는 분 손 들어주세요."라는 말에 난 당연하게도 손을 들지 않았는데 첫날 바로 깨달았다. 내가 물을 무서워했구나. 어릴 적 바다에 빠졌던 기억이 무의식 속에 존재하나봐. 그래도 이렇게 쉽게 포기할 순 없으니 개강하고 수강생이 적어지는 가을이 되면 다시 수영을 등록해서 자유형은 마스터할 수 있도록 해야지.
4. 그래서 요즘엔 저녁마다 주변의 종합운동장에서 운동 신경이 제로에 수렴하는 나조차 쉽게 할 수 있고, 유일하게 자신있는 종목인 걷기 운동을 하고 있다. 작년 여름부터 올해까지 몸과 마음이 지쳐서 전혀 운동을 하지 않았기에 계단을 오르고, 수업을 받기 위해 앉아있는 것 조차 힘들어 할 만큼 기초 체력이 정말 엉망이라 무엇보다 체력 증진에 중점을 두고 있는 내겐 역시 걷기만큼 좋은 운동이 없는 것 같다. 만보계 어플을 통해 하루에 걸은 걸음수와 시간, 거리 등을 측정하는데 기본적으로 만보를 목표로 6,000걸음 이상은 걸으려고 노력 중이다. 지금까지 가장 많이 걸은 날의 기록은 19,526걸음, 12.6km. 끊임없이 반복되는 트랙을 걷다 보면 뭔가 나라는 존재가 한없이 작아지는 것 같기도 하고, 우리 인생이란게 걸어도 걸어도 결국엔 제자리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노래를 들으면서 앞만 바라보며 걷고 있으면 이런저런 생각들이 끝을 모르고 뻗어나간다. 덕분인지 밤에는 더이상 할 생각이 없어서 뒤척이지 않고 일찍 잠자리에 들게 되었다.
5. 흔히들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고 칭하지만 나에게 진정한 독서의 계절은 여름이다. 강한 직사광선이 내리쬐는 여름에는 방학이라 사람도 별로 없고, 시원한 에어컨과 함께 할 수 있는 도서관에서 책이나 실컷 읽는게 최고지. 오랜만에 무언가에 쫓기지 않고 여유롭게 책을 읽으니 그저 행복할 따름이다. 날도 더우니 두꺼운 책을 읽다가는 지칠 것 같기도 하고 다양한 책을 접하고 싶어서 얇은 책들 위주로 읽고 있는데 서사를 통해 큰 줄거리를 이해할 수 있는 두꺼운 책에 비해 단어 하나에 담겨 있는 의미를 유추하며 읽어나가야 하는 얇은 책이 오히려 책을 읽는데 더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속독에 익숙했던 내게 정독의 묘미를 알아나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 것 같다.
6. 라디오를 한창 많이 듣던 학창시절엔 푸른밤 감성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데 어느덧 그 감성을 기꺼이 즐기게 되었다. 늦은 새벽녘, 푸른밤을 듣다가 어느새 잠들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