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자신이 나왔던 침묵의 세계와 자신이 들어갈 또 하나의 침묵의 세계 ー죽음의 세계ー 사이에서 살고 있다. 인간의 언어 또한 이 두 침묵의 세계 사이에서 살고 있고, 이 두 세계에 의해서 유지되고 있다. 그 때문에 말은 이중의 반향을 가지고 있다. 말이 나왔던 곳으로부터의 반향과 죽음이 있는 그곳으로부터의 반향을.


오늘날 말은 그 침묵의 두 세계와는 거리가 멀다. 말은 소음에서 생겨나서 소음 속에서 사라진다. 오늘날 침묵은 더 이상 하나의 독자적인 세계가 아니다. 침묵은 다만 아직 소음이 뚫고 들어가지 않은 곳일 뿐이다. 그것은 소음의 중지일 뿐이다. 소음장치가 어느 한순간 작동을 멈추면 그것이 오늘날의 침묵이다. 즉 작동하지 않는 소음이 침묵이다. 이제는 더 이상 여기에 말이 있고 저기에 침묵이 있는 그런 것이 아니다. 다만 여기에 말해지는 말이 있고 저기에 아직 말해지지 않은 말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아직 말해지지 않은 말이라는 것도 지금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아직 말해지지 않은 말들은 마치 사용되지 않은 연장들처럼 주위에 서 있다. 위협적으로 혹은 권태롭게.

언어 속에는 또 하나의 침묵, 죽음으로부터 나오는 침묵도 없다. 오늘날에는 진정한 죽음이 없는 까닭이다. 오늘날 죽음은 더 이상 하나의 독자적인 세계가 아니다. 그것은 다만 수동적인 어떤 것일 뿐이다. 즉 생명이라고 불리는 것의 중지, 그 최후의 끝일 뿐이다. 다 비워버린 생명 ー 그것이 오늘날의 죽음이다. 죽음 자체가 그렇게 죽음을 당했다. (44-45p)






인간이 언어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인간은 하나의 형상, 상징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며 따라서 자신의 형상과 동일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말을 가지고 있고, 그 때문에 인간은 형상과 기념비 이상의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형상의 지배자이며, 인간은 자신의 본질로부터 형상으로, 현상으로, 형태로 나타나는 것들을 받아들일 것인가 말 것인가를 말을 통해서 결정한다. 인간은 말을 통해서 자유를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형상을 초월하며 자신의 외양을 초월하여 자기 자신을 고양시킬 수 있고 그리하여 인간은 자신의 형상 이상의 것이 될 수 있다.


인간은 다른 그 어느 것에 의해서보다도 말에 의해서 더 많이 규정되며, 자신의 형태나 자연의 형태계보다도 말과 더 많이 연관되어 있다. 인간의 모습 주위에 드리워진 고독은 말에서 생겨난다. 즉 인간의 형태는 자연의 모든 다른 형태들 너머로 끌어올려져 있고, 말이 인간의 형태를 지켜주며, 인간의 형태는 말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한 인간의 형태가 가지고 있는 투명함 역시 말의 형태와의 관계에서 생긴다. 말 속에 깃든 정신이 인간의 형태를 투명하게 만들고 인간의 형태를 부드럽게 풀어놓기 때문에 인간의 형태는 마치 인간이라는 물질에 매여 있지 않은 듯이 존재하게 된다.


말로부터 떨어져나오게 되면, 인간이라는 자연은 더 이상 인간 외부의 자연과 결합할 수 없게 된다. 그런 인간의 형태는 하나의 조악한 살조각이며, 그것은 이제 자신에게는 없는 말과 인간이 스스로를 결합시킬 수 없게 된 그 나머지 자연과의 사이의 심연에 놓이게 된다. 그러한 인간의 형태는 자연과 말 사이에 사악하게 놓여 있는 것이다. 그러한 인간의 형태는 말 대신에 외침을 가지고 있으며, 침묵 대신에 공허를 가지고 있다.


말을 통해서 비로소 인간은 단순한 현상 이상의 것이 된다. 말을 통해서 인간은 어른거리다 사라지는 현상성으로부터 끌어올려진다. 인간은 자기 자신의 현상을 부수고 나와 현존하게 되며, 확고해진다. 말이 굳건하게 서서 붙잡아주기 때문이다. 말은 인간을 단순히 짐승이 가지고 있는 순간의 현전성으로부터 끌어내어 지속되는 순간 속으로, 현존재 속으로 끌고 간다. 참된 말은 현존재를, 그 근거를 창조한다. 말은 말 자신이 확인하고 보장하는 것들을 위해서만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그밖의 현존재를 낳는 힘을 만든다. (114-11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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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OYOUN SK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