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bruary, 2018
1. 어쩐지 외할아버지가 보고 싶은 밤. 어릴 적 방학이면 외가 시골집에서 한 달 정도를 지내곤 했었다. 재래식 화장실이라 요강을 사용하고 겨울엔 연탄을 때고 세면장도 바깥에 있었지만 할아버지를 따라서 소에 여물도 주고, 짚이나 매듭실로 아기자기한 공예품 만드시는 구경도 하고, 옥수수 강냉이 튀길 때 귀 막는 재미에 불편함은 기꺼이 감수할 수 있었다. 그러다 지겨워질 때 쯤이면 할아버지가 손수 만드신 윷으로 온종일 윷놀이를 했다. 엄마의 말로는 나와 동생은 하루종일 할아버지를 쫓아다니며 곁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고 한다. 아마 내게 남아있는 아날로그적 감수성은 그 어린 시절 할아버지와 함께 한 경험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추운 겨울 대청마루에 앉아 처마에 달려있던 곶감을 먹으며 눈 내린 마당을 멍하니 바라보던 기억이 선명하다. 외할아버지는 다정하시면서도 곧은 분이시라 지금에서야 돌이켜보면 어린 내게 삶의 본보기를 제시해주신 진정한 '어른'이셨던 것 같다. 내가 처음 참석한 장례식은 그토록 좋아했던 외할아버지의 장례식이었다. 할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기엔 너무나 어린 나이라 어렴풋이 엄마가 펑펑 울고 슬퍼했기에 동생과 둘이서 할아버지와의 추억이 묻어있는 방에서 꼼짝않고 잠만 잤었던 것 같다. 이제 다시는 할아버지의 다정한 손길과 온화한 미소를 보지 못한다는 사실보다 할아버지의 마지막을 제대로 배웅해드리지 못했다는 점이 여전히 그 시절 할아버지를 쫓아다니던 철부지 손녀와 다를 바 없는 내가 가지는 유일한 아쉬움이다.
2. 먼지가 가득 내려앉은 서랍장, 코끝에서 느껴지는 본드 냄새, 새카만 손톱과 고무로 덧댄 바지 무릎까지. 밝게 손님을 맞이하는 아주머니와 익숙하게 구두를 수선하시는 아저씨 부부의 모습은 무언가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생생한 부분이 있었다. 한겨울 난로 앞에 앉아 보았던 풍경을 나는 한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
3. 모든 건 부질없는 일인 것을 이미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렇게 씁쓸하고 우울한 건 왜일까. 나만 알고, 나만 생각하고 조금 더 이기적으로 약삭빠르게 인생을 살아가자.
4. 얼마 전 우연히 한 작가의 북토크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작품이 취향에 맞았다기 보다는 작가 자체에 대한 호기심이 더 크게 작용했기에 크게 놀랐다. 책을 읽고 어렴풋이 상상했던 모습과는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그의 책에서는 잿빛의 우울한 풍경이 연상되었는데 실제 모습은 무척 쾌활한 사람으로 보였다. 강연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책과 관련된 이야기가 아닌 글을 쓸 때와 평상시의 자신에는 다소 괴리감이 있다는 설명이었다. 때때로 연극 무대에 오른 배우처럼 가면을 쓰고 일상을 연기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할 정도로 타인과의 관계는 내게 항상 어려운 과제였다. 하지만 그저 나라는 사람의 한 부분, 어떠한 일면을 보여준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마음이 가벼워졌다. 평소 내 모습에서는 쉽게 연상해낼 수 없는 가라앉고 차분한 나를 글 속에서는 마음껏 드러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블로그에 기록하는 글들은 내게 있어서 작가의 마음으로 담아내는 한 권의 에세이와 같다. 수사적인 표현으로 화려하게 꾸며내지 않고 나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담담히 써내려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