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ember, 2017
1. 스치는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고 의연하게 버텨낼 수 있는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
2. 고레에다 감독의 필모를 하나씩 훑을수록 예상별점에 대한 확신을 잃어만 간다. 어떤 의미로는 각각의 작품이 나의 영화 취향을 구분하는 경계선이 된다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3.5)-아무도 모른다(4.5)-환상의 빛(4)-바닷마을 다이어리(2.5)-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3)-원더풀 라이프(3)
3. 책을 읽는 과정을 돌이켜보면서 나는 기본 바탕을 아주 중요시 여기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러시아 문학에 입문하기 위해 가장 먼저 1) 러시아 문학 강의를 읽고 2) 체호프의 단편을 시작으로 3) 톨스토이의 중편을 거쳐 4) 도스토예프스키의 장편에 이르렀다. 이처럼 차근차근 스텝을 밟아나가면서 최종 목표에 도달함을 선호하는 건 무엇이든지 계획적이고 체계적인 방식을 선호하는 결벽증의 변형인 것 같다.
4. 이 세상에 만연한 모든 슬픔과 분노는 결국 '외로움'에서 기인하는 것 같다.
5. 들뢰즈를 읽고 나는 현상학을 비롯해 실존주의와 이후에 구조주의로 이어지는 관념론적 사고를 지닌다는 점을 재확인했다. 이전부터 흥미 위주로 몇몇 실존주의 철학자들의 저서를 읽기는 했지만 철학이라는 학문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기울이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언어학과 연관된 구조주의적 관점이었다. <의식은 언어를 떠나서 생각할 수 없고, 이러한 언어는 개별이 아닌 전체 체계 안에서 다른 사물과의 관계에 따라 규정된다>라는 이론은 지금까지 내가 가져왔던 인식 체계를 뒤흔든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지금까지 가졌던 수많은 질문과 다양한 문학작품 속에서 접했던 고찰과 사상들의 뿌리라는 점이 자연스럽게 나를 철학으로 이끌게 된 것 같다. 물론 철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지극히 공상적이기에 현실의 삶에서 유리되지 않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 전제되어야겠지.
6. 연말을 맞이해 그동안 기록한 데이그램을 1월부터 차례대로 되짚어 봤는데 올 한 해도 참 시답잖은 생각들을 많이 했구나, 싶었다. 이전엔 끊임없는 생각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나를 옭아매었던 질문에 이제야 답을 찾게 되었다. 생각하기를 포기하고 멈추는 나는 결코 '나'가 아닐 것이라는. 앞으로도 나는 스스로에게 계속해서 질문하고 생각하기를 멈추지 않겠지만 더 이상 그 과정을 버겁게 여기지 않을 것이다.
7. 돌이켜보면 지난 2년간 나는 얕은 우울증 상태에 빠져있었던 것 같다. 무기력에 잠식당해 끝도 없는 어두운 터널을 정처 없이 헤맸을 따름이다. 주변 친구들이 앞으로 나아가는 와중에 혼자 우두커니 멈춰 서 있는 자신이 불안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 시기들이 앞으로의 나를 위한 자양분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담담하지만 명확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다시 찾아올 수많은 밤들이 이제 더 이상 두렵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