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러시아)
소설|열린책들|2009
*Преступление и наказание
★★★★
-제2부-
<빌어먹을!> 그는 갑자기 격렬한 증오심으로 발작 상태에 빠져 이렇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래, 시작되었단 말이지, 이렇게 시작되었단 말이지. 노파니 새로운 삶이니 하는 것은 다 악마에게나 잡혀가라고 해! 맙소사! 이 모든 일이 얼마나 추악한가…! 나는 오늘 얼마나 많은 거짓말을 했고, 얼마나 많은 비열한 짓을 했던가! 나는 또 얼마나 비열하게 일리야 뻬뜨로비치에게 아첨을 하고 아양을 떨었던가! 하지만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니다! 그들 모두에게, 그리고 내가 아양을 떨며 비위를 맞춘 것에도 침이나 뱉어 버리자! 그게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그게 아니다…!>
그는 갑작스럽게 발걸음을 멈췄다. 새롭고 전혀 뜻하지 않았던, 너무나 단순한 질문이 순식간에 그를 당황하게 만들었고, 경악하게 했던 것이다.
<만일 정말로 네가 이 모든 일을 의식적으로 행한 것이라면, 바보스럽게 어쩌다가 그냥 저지른 게 아니라, 만일 진정으로 어떤 일정하고 확고한 목적이 있었던 거라면, 너는 왜 지금까지도 지갑을 들여다보지 않았고, 네가 무엇을 훔쳤는지 알아보지도 않았느냐? 그러면서 왜 넌 온갖 고통을 감내하며, 이런 비열하고 추악하고 저급한 짓을 의도적으로 저질렀느냐? 그런데 너는 조금 전에 그 지갑을 물에 던지려고 했다, 네가 아직까지 열어 보지도 않은 물건들과 함께 말이다…. 도대체 어떻게 된 셈인가?
그랬다, 그건 그랬다. 그건 모두 맞는 말이었다. 그는 이것을 예전부터 알고 있었고, 이건 그에게 전혀 새로운 질문이 아니었다. 지난밤에 물에 버리기로 작정했을 때도 그 어떤 흔들림이나 갈등도 없이, 마치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처럼, 그리고 다른 어떤 것도 불가능한 것처럼 그는 그렇게 결정을 내렸던 것이다…. 그렇다, 그는 그것을 잘 알고 있었고, 다 기억하고 있었다. 어쩌면 어제 그가 궤 옆에 쭈그리고 앉아 상자들을 끄집어냈던 바로 그 순간에 그는 그렇게 결정을 내렸는지도 모른다…. 아니, 사실 그랬던 것이다…!
<내가 병이 나서 이러는 거야.> 그는 마침내 우울하게 이런 결론을 내렸다. <나는 나 자신을 괴롭히고 학대한 나머지 스스로도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 거야…. 그리고 어제도, 그제도 나는 계속해서 나 자신을 괴롭혔다…. 건강을 회복하면… 나를 학대하지 않게 될 거야…. 그런데 건강이 회복되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오, 세상에! 이 모든 것이 정말로 지겹기만 하다…!> 그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걸었다. 그는 어떻게 해서든 기분을 완전히 바꿔보고 싶었지만, 어떻게 하면 좋을지,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지 몰랐다. 한 가지 극복할 수 없는 새로운 감정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강하게 그를 사로잡았다. 그것은 마주치는 모든 것, 주변의 모든 것에 대한 끊임없는, 거의 생리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혐오감이었다. 그것은 집요하고 사악한, 증오에 가득 찬 혐오감이었다. 그는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이 혐오스러웠다. 그들의 얼굴, 발걸음, 행동거지, 모든 것이 그랬다. 만일 그때 누군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면, 그는 그 사람이 누구이든 상관없이 그에게 침을 뱉든지, 그를 물어뜯어 버렸을 것이다….
-제3부-
「제 논문이 꼭 그런 식으로 전개된 것만은 아닙니다.」 그는 간결하게 겸손한 태도로 말했다. 「하지만 인정하건대, 당신은 그 논문을 거의 올바르게 이해하셨군요. 심지어 아주 정확하게요…. (그는 아주 정확하게 이해했다고 인정해 주면서 쾌감을 느꼈다.) 다만 유일하게 차이가 나는 점은 저는 당신이 말씀하신 것처럼 비범한 사람들이 반드시 모든 종류의 폭력을 써야만 하고, 그래야만 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하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다만 <비범한> 사람은 권리를 가지고 있다…. 즉 공식적인 권리가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양심상… 모든 장애를 제거할 수 있는 권리를 가졌다고 말한 것뿐입니다. 그것도 만일 그의 신념(때로는 모든 인류를 위한 구원적인 신념일 수도 있지요)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 요구되는 경우에 한해서만 말입니다.
(중략)
평범한 인물과 비범한 인물의 분류에 대해서는 그것이 조금 독단적이었다는 것은 인정하겠습니다. 그렇지만 저 역시 정확한 수치를 근거로 주장한 것은 아닙니다. 저는 제 주된 사상을 믿고 있는 것뿐입니다. 그 사상이란 바로 자연의 법칙상 사람들은 <대체로> 두 가지 분류로 나뉜다는 겁니다. 하나는 저급한(평범한) 부류로서 오로지 자기와 비슷한 사람들을 출산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사람들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가 처한 환경 속에서 <새로운 말>을 할 줄 아는 재능 혹은 천분을 부여받은 사람들입니다. 물론 이 큰 분류 아래로 수많은 작은 부류들이 무한하게 있을 수 있겠지만, 이 두 부류를 구분 짓는 특징들은 대단히 명확합니다. 첫 번째 부류, 즉 재료는 대체로 말해서 자기 천성상 보수적이고 체면을 차리는 사람들로 복종 속에서 살아가며 순종하기를 좋아합니다. 제 생각에 그들은 반드시 복종을 해야 하는데, 그 이유는 그것이 그들의 사명이고, 그렇게 하는 게 그들에게는 전혀 굴욕적으로 여겨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 모두는 그 능력에 따라서 법률을 어기는 파괴자들이거나 그럴 경향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의 범죄는 물론 상대적이고 다양합니다. 그들 대부분은 다양한 분야에서 더 좋은 것의 이름으로 현재의 것을 파괴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 사상을 위해 시체와 피를 건너뛰어야 한다면, 자기 내면의 양심에 따라서 피를 뛰어넘는 걸 스스로에게 허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사상과 그것의 중요도에 따라서 그렇다는 겁니다. 저는 제 논문에서 이런 의미에서만 범죄에 대한 그들의 권리가 유효하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당신도 기억하시겠지만 이 논의는 법률적인 관점에서 시작된 것이니까요.) 하지만 그렇게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대중은 거의 한 번도 그들의 이러한 권리를 인정한 적이 없으므로, 이제까지 그들을 처형하고 교살해 왔습니다. (어느 정도는 말이에요) 그럼으로써 그들은 아주 정당하게 자신의 보수적인 사명을 수행했던 거지요. 다만 다음 세대에서는 대중들이 처형당한 사람들을 연단 위에 올려놓고, 그들에게 경배심을 표하지요. (그것도 어느 정도는 말입니다.) 첫 번째 부류는 항상 현재의 사람들이고, 두 번재 부류는 미래의 사람들입니다. 전자는 세계를 보존하고 그 수를 늘립니다. 후자는 세계를 움직여서 그 목적으로 인도하지요. 이 부류도 저 부류도 존재할 권리를 완전히 동등하게 소유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제가 보기에 모든 이들은 동등한 권리를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중략)
「이봐, 만일 그 말이 진심이라면, 그건… 물론 그 말은 새로운 말도 아냐. 네 말이 맞아. 그 말은 우리가 수천 번이나 읽고 들었던 말과 비슷해. 하지만 네가 한 모든 말 중에서 정말로 <독창적인 것>은, 그러니까 너 자신만의 의견은, 내 생각에는 정말 무서운 일이지만, 어쟀거나 네가 <양심상> 유혈을 허용한다는 점이야. 이런 말을 해서 미안한지만, 그것도 광신적일 정도로 말이야…로 이 점이 네 생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야. <양심상> 유혈을 허용한다는 것, 그것은… 그것은 내 생각에 유혈을 공식적으로 그리고 합법적으로 허용하는 것보다도 더 무서운 일이야…」
-제5부-
「나도 알아. 그건 죄다 내가 이미 어둠 속에 누워서 곰곰이 생각할 때, 몇 번씩이나 스스로에게 속삭였던 말이야…. 나는 그 문제를 두고 하나하나 사소한 것까지 나 자신과 논쟁했기 때문에, 다 알고 있어, 다! 그리고 그때 나는 계속 그런 생각만 하는 것이 너무 지겨웠어! 나는 죄다 잊어버리고 다시 시작하고 싶었어, 소냐. 망상을 그만두고 싶었어! 정말로 내가 정신이 혼미한 채로 바보처럼 그곳에 갔다고 생각하는 거야? 나는 영리한 사람으로서 그 곳에 갔던 거야. 그러나 결국 그것이 나를 파멸시켰지. 당신은 정말 내가 몰랐다고 생각해? 이를테면, 내게 권력을 휘두를 권리가 있는지 없는지를 끊임없이 자문한 걸 보면, 이미 난 그럴 권리가 없는 사람이라는 걸 내가 몰랐다고 생각해? 인간이 <이>인가 아닌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제기한 걸 보면, 이미 <내게 있어서> 인간은 <이>가 아니라는 걸, 그리고 머릿 속에 이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고, 이런 의문을 제기하는 일 없이 곧바로 일을 저지를 수 있는 사람에게만 인간은 <이>라는 사실을 내가 몰랐다고 생각하느냔 말이야…? 나폴레옹이라면 그 일을 저질렀을까 아닐까의 문제를 가지고 내가 며칠 동안 고민을 했다는 건, 내가 나폴레옹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걸 나는 분명히 느꼈어…. 나는 이런 잡다한 생각이 주는 고통을 모두 견뎌 냈어. 그리고 그 생각을 내 어깨에서 다 털어 버리고 싶었어. 난 말이야, 소냐, 궤변 없이 그냥, 자신을 위해서, 오로지 나 자신만을 위해서 죽이고 싶었어! 이 점에 대해서 나는 나 자신에게까지 거짓말을 하고 싶지는 않았어! 어머니를 돕기 위해서 죽인 게 아냐. 그건 헛소리지! 재산과 권력을 얻어서 인류의 은인이 되기 위해서 죽인 것도 아냐. 그건 거짓말이야! 나는 그냥 죽였어. 나 자신, 나 한 사람을 위해서 죽인 거야. 나를 이해해 줘, 소냐. 아마 같은 길을 가더라도, 다시는 절대로 살인을 하지는 않을 거야. 나는 다른 것을 알고 싶었어. 그것이 나를 충동질했어. 나는 그때 알고 싶었던 거야, 어서 알고 싶었어. 다른 사람들처럼 내가 <이>인가, 아니면 인간인가를 말이야. 내가 선을 뛰어넘을 수 있는가, 아니면 넘지 못하는가! 나는 벌벌 떠는 피조물인가, 아니면 권리를 지니고 있는가…」
「죽이는 권리요? 죽이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요?」 소냐는 다시 두 손을 맞잡았다.
「내 말을 막지마, 소냐! 나는 당신에게 한 가지만을 증명하고 싶으니까. 악마가 나를 유혹했어. 그러고는 나중에 그 악마는 내가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이>이기 때문에 그곳에 갈 권리를 지니지 못했다고 하더군. 그 녀석은 나를 실컷 조롱한 거야. 만일 내가 <이>가 아니었다면, 당신에게 왔을까? 들어 봐, 내가 그때 노파에게 간 것은 다만 <시험해 보기 위해서 갔던 거야…. 그렇게 알아 둬!」
「그리고 죽였군요! 죽였어!」
「그런데 어떻게 죽였지? 살인이 그렇게 행해지는 건가? 내가 한 것처럼 그렇게 살인하러 가는 사람도 있을까! 내가 어떻게 걸어갔는지 언젠가 내가 나중에 이야기를 해주지…. 내가 과연 노파를 죽인 걸까? 나는 나 자신을 죽였어, 노파가 아니라! 그렇게 단칼에 나는 나 자신을 영원히 죽여 버린 거야…!」
-제6부-
「로지온 로마노비치, 그들에게 <고난을 당한다>는 것이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아십니까?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고난을 당하는 것이 필요>한 겁니다. 그건 고난을 받아들인다는 의미이지요. 그러니 하물며 국가 권력으로부터 받는 고난이라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요.」
(중략)
「자, 이제 발견도 하고, 찾기도 하십시오. 우선 당신은 진작 공기를 바꿔야 했어요. 어떨까요? 고난도 역시 좋은 일이겠지요. 고난을 받으십시오. 고난을 원하는 니꼴라이가 어쩌면 옳은 건지도 모릅니다. 믿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교활하게 머리를 짜내지도,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삶 속으로 뛰어드십시오. 그러면 곧장 당신은 어떤 해안에 도달해서 두 다리로 서게 될 겁니다. 어떤 해안이냐고요? 그걸 내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난 단지 당신은 아직 더 살아야 한다고 믿을 뿐입니다. 당신이 내 말을 마치 달달 외운 지루한 설교처럼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도 압니다. 하지만 어쩌면 나중에 기억이 나서, 언젠가는 도움이 될지도 모르지요. 나는 그날을 위해서 말하고 있는 겁니다. 당신은 마음을 크게 먹고,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곧 있을 위대한 실천 때문에 겁을 먹었나요? 겁을 먹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만일 그런 첫걸음을 내디뎠다면, 강해지셔야지요. 이건 정의의 문제입니다. 그러니 정의가 요구하는 것을 행하십시오. 믿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맹세코 삶이 당신을 이끌어 줄 겁니다. 나중에는 스스로 마음에 들게 될 거예요. 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오로지 공기입니다, 공기, 공기!」
*룸펜 인텔리겐치아 : [독일어]Lumpen) [러시아어]intelligentsia) 지식층에 속하면서 실직한 사람
*러시아어로 범죄prestuplenie라는 단어는 '어떤 경계를 뛰어넘는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여기서 경계란 인간이 보편적으로 지니고 있는 도덕률을 의미한다.
*라스꼴리니꼬프의 어근은 라스꼴raskol로, 언어적인 의미로 보았을 때 '분열'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라스꼴리니꼬프는 분열된 사람이라는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