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드가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소재를 특유의 방식으로 속도감 있게 그려낸 작품. 가볍고 유쾌하지만 세상을 향한 따스함과 용기를 갖게 하는 일드의 장점을 잘 살린 것 같다. 상세한 부연설명 덕분에 만화 업계나 만화가라는 직업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내가 봐도 흥미를 가지고 볼 수 있었다. 또한 신선한 페이스를 바탕으로 베테랑 조연 배우들의 안정적인 연기가 이 드라마의 매력을 뒷받침하는 요소 중의 하나인데 덕분인지 캐릭터들이 아주 생생하게 살아 움직였다.
여기서도 감동과 교훈적 설교는 역시 빠지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각기 다른 타입의 만화가와 편집자가 만화를 대하는 태도와 애정을 담은 시선은 드라마를 끝까지 보기에 충분했다. 다만 일드에서 '간바리마스' 소리는 이제 그만 들었으면 하는 게 솔직한 심정이지만. 가장 인상적이었던 에피소드는 만화가 어시스턴트인 누마타가 오랜 꿈을 포기하고 본가로 돌아가는 모습을 그린 이야기였다. 평생 꿈꾸던 것을 포기한다는 건 얼마나 많은 무력감과 자신을 인정하는 용기를 필요로 하는 걸까. 아직은 현실에 부딪히지 않았던 어린 시절엔 일드가 전하는 희망찬 메시지가 좋았다. 하지만 자신이 맡은 일에 열정적으로 임하고 그 과정에서 보람을 얻는다는 건 그저 꿈같은 일이지, 라고 생각하고 마는 나는 이제 어른이 되어버린 걸까. 이 드라마를 보고 있으니 학창시절의 풋풋함이 그리워지는 한편 이제는 순수함을 잃은 지금 나 자신의 모습에 씁쓸해졌다.
출판업계의 하락세가 세계 어느 곳에서든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은 책을 사랑하는 독자로서 슬프기만 한 일이다. 점점 디지털화되는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전자책이 새로운 대책으로 떠오른지도 꽤 오래지만 종이를 넘기며 책의 감촉을 느끼고 오래된 책에서 맡을 수 있는 책 냄새는 쉽게 포기할만한 것이 아니다.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읽고, 웹툰을 보고, 게임을 하고. 책이 아니더라도 즐길 것이 이토록 많은 시대에도 여전히 누군가는 책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지혜를 얻고 있다. 빠르게 발전하는 세상 속에서도 사라져서는 안 될 것이 분명하게 존재한다고, 나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