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맨하튼에 사는 중년의 백인 남성이었다면 매드맨은 인생 드라마가 되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계층적으로 그와는 대척점에 서있는 이제 막 사회에 한 발을 내딛은 동양인 여성으로서 프레임이 전환될 때마다 숨을 쉬듯 자연스럽게 보이는 차별에 기분이 아주 더러웠다. 시즌 1에서 돈 드레이퍼는 금발의 아리따운 아내와 토끼 같은 자식들, 회사에서는 잘 나가고 그림 같은 전원주택에 게다가 지칠 때 품어주는 내연녀까지 있는, 수많은 남자들이 꿈꾸는 환상적인 삶을 살고 있는데 그 작태를 보고 있자니 내 입장에서는 환멸스럽기 그지없었다. 마치 남자들의 머릿속을 그대로 들여다보고 있는 듯한 불쾌감이랄까. 물론 이해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그리고 매드맨 속에서 그려지는 남성 인물들 특유의 우쭐함은 정말 꼴보기 싫을 정도였는데 한껏 올라간 어깨와 감출 수 없는 미소의 조합은 절로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쿨한 척 하면서 열등감에 찌든 남자들의 질투와 뒷담은 말할 것도 없고. 거기다 자존심을 내세우며 쓸데없는 짓으로 시간을 낭비하는 치기란 정말 한심할 정도였다. 여기에 로저의 추태를 보고 있자면 내가 저딴 짓 하는 거까지 보고 있어야 하나, 싶기도 했다. 매드맨을 보면 배경음으로 뉴욕, 뉴욕, 뉴욕♪ 하고 'Empire State of Mind'가 자동적으로 재생되는데 이것이 바로 아메리칸 프리덤인가요. 어쩌면 자유의 동의어는 현실에서의 방탕함이고, 반의어는 청렴함일지도 모르겠어. 물론 유의어는 열정이지.
하지만 시대상 반영이나 역사적 사실의 고증, 복식 구현 및 특유의 분위기를 비롯한 훌륭한 연출로 인해 자꾸만 재생 버튼으로 가는 손을 멈출 수가 없었다. 매드맨은 역시 내게 길티 플레져 같은 존재야. 무엇보다 이 시대 그리고 사회의 역겨운 행태들에 대한 비판의식을 전제로 하는 걸. 사실 내가 외면하고 있었을 뿐 극 중에서 그려지는 1960년대의 미국은 우리의 생생한 현실이다. 표현방식이 직접적이고 자극적이라 그렇지 여기에 배경과 등장인물, 사건을 조금만 각색하면 현재의 상황과 별반 다를 게 없으니까. 어차피 이 시대와 그리고 현재에 만연한 차별을 보여주려면 미화하거나 아닌 척 하는 것보다는 이렇게 대놓고 그려내는 게 낫지. 숨길 것 없이 당당하게 보여줘야 속 시원하게 욕하고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을 테니까.
또 각각의 인물들이 가진 공허함을 무엇보다 잘 보여주는데 특히 베티를 그려내는 방식이 인상적이었다. 뛰어난 미모와 더불어 남부러울 것 없는 생활을 영위하는 중산층 가정의 행복한 주부의 표상임에도 억압과 속박 속에서 주어진 환경에 순응함에 따라 억제된 욕망을 표출할 수 없어 드러나는 불안감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것 같다. 그리고 어느 시점부터 돈의 인간성에 대해서는 기대를 저버리고 페기가 성장해나가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봤는데 'it's not fair' 이보다 더 마음을 울리는 대사가 없었다. 여기에 조앤을 비롯한 여성 인물들의 주체적인 면모를 강조하면서 동시에 그들을 향한 섬세한 시선을 멈추지 않는 점도 뚜렷하게 느껴졌다.
다만 전체적으로 하나의 큰 줄기를 이루는 사건의 부재와 에피소드 간의 단절성으로 흡입력이 다소 떨어지는 점이 아쉬웠다. 하나의 광고를 위해서 모든 인물들의 관계가 얽히며 협업하고 그 과정을 그려가는 서사가 있다면 좋았을 텐데. 매드맨은 특정 인물에 대한 감정이입 보다는 방관자로서 그저 전개를 지켜보게 되는 드라마였는데 그건 아마 내가 그들에게 있어서 인종적으로도, 사회 계급적으로도 완전한 이방인이라는 점이 한몫하는 것 같다. 이 때문에 드라마 전반에서 보이는 비유와 암시를 비롯해 치밀한 고증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 채 흘려보낸 적도 많았을 테지. 어떤 의미로는 '광고'라는 주제에 걸맞게 모든 것을 추측하고 역설적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