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드를 분기마다 3, 4편씩 챙겨보던 시절도 있었는데 최근 몇 년간은 일드가 거의 가뭄 수준이라 한동안 멀리하다가 정말 오랜만에 스토리, 연출, 배우 삼박자를 고루 갖춘 괜찮은 작품을 볼 수 있어 기뻤다. 원작이 미나토 가나에라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어느 정도의 재미는 보장되어 있었는데 특유의 날카로운 심리묘사는 여전했지만 여타 작품과는 달리 죄를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에서 파생된 삶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와 따스함이 돋보인 점이 다소 의외였다.
어떻게 보면 전체적으로 어려운 상황을 서로 의지하며 이겨낸다, 라는 지극히 전형적인 이야기 구성을 따르고 있음에도 섬세한 연출을 바탕으로 전혀 통속적이거나 평이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 이 드라마의 가장 큰 매력이다. 무엇보다 노조미가 그 모든 걸 스스로의 노력을 통해 쟁취해내는 모습이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던 것 같다. 이와 관련해 '힘내'라는 말이 그토록 간절하고 안타까운 외침이라는 사실을 지금까지 미처 깨닫지 못했었는데 아마 내겐 이들과 같은 절실함이 부족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결국엔 항상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삶을 살고 있었던 거겠지. 또 노조미와 나루세를 비롯한 노바라 하우스의 조합은 여타 드라마나 소설 속에서도 자주 그려지지만 이를 '죄의 공유'라는 말로 정의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결국 죄의 공유를 통해 궁극적인 사랑의 형태에 도달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이 이들을 비극으로 이끌 수밖에 없었겠지만.
사실 어느 시점부터 일어난 사건들에 대한 범인과 그 경위가 충분히 짐작이 갔고, 역시나 내 생각은 맞아들었지만 이 작품에서 범인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는 요소이다. 중요한 것은 그날 그 장소에 있었던 이들이 누구를 지키기 위해 진실을 숨기고 거짓을 말했어야 했는지에 대한 안타까움과 공감. 안도를 지키고자 했던 10년 전 그 순간부터 노조미에게 있어 사랑의 무게는 이미 나루세에서 안도 쪽으로 기울었다고 생각한다. 죄의 공유와 자신보다 상대방을 포용하고 감싸 안아주는 태도로 말미암아 노조미의 사랑은 언제나 자기희생적인 면모를 보일 수밖에 없었다. 다시 돌아간 그곳에서는 따스한 햇볕 아래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을 마음에 담은 채 노조미가 자유롭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배우들에 대해서 살짝 언급하자면 에이쿠라 나나는 그 이름으로부터 자연스레 연상되는 발연기 이미지를 이 작품을 통해 완전히 벗어던졌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배역을 훌륭히 소화해주었다. 특유의 건강하면서도 상큼한 모습 또한 노조미쨩에게 드리워진 어둠을 지우는 데 일조했다고 생각한다. 쿠보타 마사타카는 평소 좋아하는 취향과는 거리가 먼 타입이라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았기에 첫인상은 창백한 얼굴과 가는 체격 때문인지 날개를 다친 연약한 새로 다가왔다. 하지만 상처를 보듬어주었던 누군가에게 마지막까지 자신의 본분을 다하는 나루세군에게 무척이나 걸맞은 배우였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코이데 케이스케는… 신이시여, 어째서 저를 시험에 들게 하시나요. 할많하않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