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놀트 하우저 (헝가리)
문화사|창비|2016
*Sozialgeschichte der Kunst und Literatur
★★★★
※ 외래어 표기에 있어서 지나친 현지 발음화로 다소 가독성이 떨어짐 ex) 이탈리아 - 이딸리아, 피카소 - 삐까소
1장. 자연주의와 인상주의
(1) 1830년의 세대
'예술을 위한 예술'은 의심할 여지 없이 미학상 가장 복잡한 문제를 이룬다. 예술작품은 유리 자체의 구조나 투명도, 색깔과는 관계없이 다만 그것을 통해 인생을 관찰할 수 있는 유리창에 비교되어왔다. 이 비유에 따르면 예술작품은 관찰과 인식의 단순한 도구, 즉 그 자체로는 이해관계가 없으면서 어떤 목적을 위해서 수단으로만 봉사하는 창유리나 안경 같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창문 저쪽에서 벌어지는 광경에 주의를 빼앗기지 않고 창유리의 구조에만 시선을 고정할 수 있다면, 예술작품은 또한 그 자체를 위해서 존재하는 자립적 형식체로, 그 자체로 완결된 의미의 결합체로 생각된다. 그리고 이 경우 '창문을 통해서 내다보는 것'은 언제나 그 내적 구조를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된다. 에술작품의 의미는 줄곧 이 두 관점―생활과 모든 작품 외적 현실에서 단절된 하나의 존재라는 관점과, 생활과 사회와 실제에 의해서 제약된 하나의 기능이라는 관점―사이를 왕래한다. 직접적인 미적 체험의 입장에 서면 자주성과 자족성이 예술작품의 본질처럼 보이게 마련인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에서 예술을 분리시키고 현실의 자리에 예술을 대체함으로써만, 즉 총체적이고 자율적인 하나의 우주를 형성함으로써만 하나의 완전한 환영을 만들어내는 일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환영은 결코 예술의 전체 내용이 아니며, 때로는 예술이 주는 감명과 전혀 무관할 수도 있다. 가장 위대한 작품이란 그 자체로 완결된 미학세계의 기만적인 환각주의를 거부하고 자기 자신을 넘어서서 먼 곳을 향한다. 그것은 자기 시대의 커다란 인생문제와 직접적인 관계를 가지면서 언제나 '인간 존재에서 어떻게 의미를 얻어낼 수 있는가? 우리는 어떻게 그 의미에 참여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의 해답을 추구하는 것이다. -42p
앵겔스는 최초로 작가의 정치적 입장과 예술 창작 사이의 모순을 과학적 탐구방식으로 다룸으로써 예술사회학 전반에 걸쳐 가장 중요한 발전원리의 하나를 공식화했다. 그 이래 예술적 진보성과 정치적 보수주의는 완전히 양립할 수 있으며, 현실을 충실하고 올바르게 묘사하는 모든 정직한 예술가는 본래적으로 그 시대에 계몽적·해방적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그런 예술가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반동적·반자유주의적 이데올로기의 밑바닥을 이루는 인습과 상투어, 터부와 도그마들을 파괴하는 데 기여한다. ⇒ 발자크적 리얼리즘 -82p
(2) 제2제정기의 문화
자연주의적 입장의 가장 중요한 근원은 1848년 세대의 정치적 경험이다. 혁명의 실패, 6월봉기의 진압, 나폴레옹 3세의 집권 등이다. 이 사건들에 따른 전반적인 환멸감과 민주주의자들의 실망감은 객관적·사실적이고 주어진 경험에 엄정하게 중립적인 자연과학의 태도를 통해 가장 잘 표현된다. 모든 이상과 유토피아가 실패하고 난 후 이제 사람들은 사실에, 그리고 오로지 사실에만 집착한다. 자연주의의 이러한 정치적 근원이 그 반낭만주의적이고 도덕적인 경향을 설명해준다. 즉 현실에서 도피하기를 거부하고 사실묘사에서 철저한 정직성을 요구한 점, 객관성과 사회적 단결을 보장하는 길로서 개성의 배제와 무감각성을 추구한 점, 현실을 인식하고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개조하려는 자세로서의 행동주의, 현재만이 유일하게 의미있는 대상이라고 고집하는 일종의 현대주의, 그리고 소재 선택과 독자층의 선택에 있어 대중적인 경향, 이런 특징은 모두 자연주의의 정치적 근원과 관련된 것이다. -101p
낭만주의를 문제 삼는 것과 동시에 현대인의 모든 문제성과 난점, 즉 현재로부터의 도피, 항상 자기가 있어야 하는 곳과는 다른 곳에 있으려는 욕망, 현재에의 접근과 책임을 두려워해 끝없이 이국을 동경하는 심리 등이 폭로되었다. 낭만주의 분석은 그 시대의 모든 질병에 대한 진단으로 발전했고, 현대인의 정신병, 한번 걸리면 자기 자신을 제대로 대면하지 못하고 항상 남의 처지에 서고 싶어하며, 한마디로 말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그랬으면 하는 식으로 보는, 그 정신병의 정체를 밝히는 데 이른다. 이런 자기기만과 삶의 변조에서, 누군가 플로베르의 철학을 가리켜 이른 단어를 빌린다면 이런 '보바리즘'(bovarysme)에서, 플로베르는 건드리는 것마다 왜곡하고 마는 현대적 주관성의 본질을 포착해낸다. 우리가 현실을 하나의 왜곡된 변형(déformation)을 통해서만 체험하며 우리 사고작용의 주관적 형식에 갇혀 살고 있다는 느낌은 『보바리 부인』에서 처음으로 그 완벽한 예술적 표현을 얻는다. -132p
제2제정기는 낭만주의 시대와 반대로 합리주의와 반성과 분석의 시기이다. 도처에서 기술문제가 전면에 나오고, 모든 장르에서 비평적 지성이 번창하는데 희곡에서는 '잘 만들어진 각본'의 대가들이 이러한 비평정신을 대변한다. 그들이 이룬 가장 중요한 발전은 무대효과가, 아니 연극이란 것을 상연할 수 있는 원초적 가능성 자체가 일련의 약속과 게임의 규칙에, 사르세가 말한 대로 '속임수'에 의존한다는 것, 그리고 작가와 관객 사이의 묵계가 다른 장르보다 연극에서 더욱 결정적이라는 것을 인식한 데 있다. 무엇보다 전혀 뜻밖의 사건 전환에 대한 관중의 기대, 그 의식적인 자기기만과 게임 규칙에 대한 저항 없는 수락이 연극의 가장 중요한 약속인 것이다. '만들어야 할 장면'은 사르세가 지적한 것처럼 관중이 그것에 관해서 꼭 일어나리라고 정확하게 알고 있는 불가피한 토론이며, 그 '대단원'은 관객이 기대하고 갈망하는 해결이다. 그리하여 연극은 가장 엄격한 약속하에서 최대의 묘기로 연출되는, 그러면서도 소박하고 원시적인 면을 지닌 하나의 사교 게임이 된다. 이러한 연극의 복잡성은 극작가가 다루는 재료의 복잡성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게임 규칙의 번잡함에서 비롯한다.
…오늘날의 모든 연극작품들이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모두 프랑스의 '잘 만들어진 각본'에 연원을 둔다. 갈등과 긴장을 만들어내는 기술, 매듭을 엮고서 풀기를 미루는 방식, 미리 사건의 전환을 준비하면서도 그것으로 관객에게 경악을 일으키는 기술, '극적 반전'들을 적당한 곳에 알맞은 때에 배치하는 여러 규칙, 거창한 논쟁과 마지막 결말의 작위성, 막이 내리면서 최종 순간에 이르러 문제를 해결하는 갑작스러운 충격―이 모든 것을 그들은 스크리브와 뒤마 2세와 오지에와 라비슈와 사르두에게서 배웠던 것이다. -150p
(3) 영국과 러시아의 사회소설
도스토옙스키에게 심층이란 인간의 비합리적인 면, 귀신들린 것 같고 꿈 같고 도깨비 같은 면을 뜻한다. 그것은 표면의 진실을 그리는 것과는 다른 자연주의를 요구하며, 실생활의 요소들이 서로 환상적이고 섞이고 서로 어지럽게 밀어내며 서로 다투어 눈을 끄는 현상에 눈을 돌릴 것을 요구한다. 도스토옙스키는 이렇게 선언한다. "나는 예술에서 무엇보다도 리얼리즘을 사랑한다. 환상적인 것에 접근하는 리얼리즘을… 현실보다 더 환상적이고 예측할 수 없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 아니, 현실보다 더 있기 어려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표현주의와 초현실주의에 대한 이보다 더 정확한 정의는 없다. 디킨스에게 있어서는 아직 간헐적이고 대부분 무의식적이었던 현실과 꿈, 경험과 비전 사이의 무인지대와의 접촉이 여기서는 '인생의 비밀들'을 향한 항구적인 개방상태로 발전한 것이다. -238p
(4) 인상주의
기술 진보와 관련해 가장 눈에 띄는 현상은 문화의 중심이 현대적 의미의 대도시로 발전해가는 것으로서, 이 대도시는 새로운 예술이 뿌리내리는 토양을 형성하게 된다. 인상주의는 유례없이 도시적인 예술인데, 그것은 다만 인상주의가 풍경으로서의 도시를 발견하고 그림을 시골에서 도시로 옮겨왔기 때문이 아니라, 세상을 도시인의 눈으로 보고 현대적 기술인의 극도로 긴장된 신경으로 외부 세계의 인상들에 반응하기 때문이다. 도시생활의 다양한 변화, 신경질적인 리듬, 갑작스럽고 날카롭지만 언제나 사라지게 마련인 인상들을 묘사하기 때문에 그것은 도시적 양식이다. 그리고 바로 그런 점에서 인상주의는 감각적인 지각의 엄청난 팽창, 새롭고도 예민한 감수성, 새로운 민감성을 뜻하며, 고딕예술 및 낭만주의와 더불어 서양예술사의 가장 중요한 전환점을 대변한다. 회화의 역사에 나타나는 변증법적 과정, 즉 정(靜)과 동(動), 선과 색, 추상적 실서와 유기적 생명의 교체에 있어 인상주의는 동적 발전경향의 정점이자 정적인 중세적 세계상의 완전한 해체를 뜻한다.
인상주의를 가장 단순하게 정식화할 수 있다면 그것은 영속성과 지속성에 대한 순간의 우위, 모든 현상은 어쩌다 일시적으로 그렇게 놓여 있을 뿐이라는 느낌, '두번 다시 발 디딜 수 없는' 시간의 강물 위로 사라져가는 하나의 물결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인상주의적 방법은 모든 예술 수단과 기교를 동원하여 무엇보다 이러한 헤라클레이토스(Heracleitos, 만물은 영원히 생멸하며 변화한다고 주장한 그리스 철학자)적 세계를 표현하려 하며, 현실이란 존재가 아니라 생성이고, 결정된 상태가 아니라 움직이는 과정임을 강조하려 한다. 모든 인상주의의 그림은 존재의 '영구운동'에서 어느 한순간을 포착하며, 서로 갈등하는 힘들의 유희적 운동에서 위태롭고 불안정한 균형상태를 묘사한다. 인상주의의 시선은 자연의 모습을 생성과 소멸의 한 과정으로 변모시킨다. 그것은 안정되고 확고한 모든 것을 여러 변형들로 해체하며, 실재에 미완의 단편적 성격을 부여한다. 바라보이는 객관적 실체 대신에 바라본다는 주관적 행위의 재현은―이와 더불어 현대의 투시도법적 회화의 역사가 시작되는데―여기서 그 완성에 이르는 것이다.
눈에 띄지 않는 무수한 단계를 거치면서 쉴 새 없이 변화하는 상태의 현상들로 가득 찬 세계는, 모든 것이 그 안으로 합류하며 관찰자의 다양한 시점을 빼면 달리 구별할 길 없는 하나의 연속체라는 인상을 낳는다. 그 세계에 대응하는 예술은 현상이 순간적이고 과도기적임을 강조할 뿐만 아니라, 또 단순히 인간을 사물의 척도로 볼 뿐만 아니라, 개개인의 '지금 여기'의 관점에서 진리의 기준을 찾는다. 그런 예술에서는 우연을 모든 존재의 원리로 여기며 순간의 진리가 다른 모든 진리를 무력하게 만들 것이다. 순간과 변화와 우연의 우위는 미학적으로 말하면 분위기가 생활을 지배한다는 것, 말하자면 변하기 쉬울뿐더러 분명치 않고 모호한 속성을 가진 사물과의 관계가 삶에서 지배적인 의의를 갖는다는 것을 뜻한다. 예술표현을 이처럼 순간적 분위기에 귀속시키는 데에는 동시에 인생에 대한 기본적으로 수동적인 태도, 수용적·관조적 주체로서의 방관자 역할에 대한 만족, 멀찍이서 바라볼 뿐 뛰어들지 않겠다는 입장, 요컨대 전적으로 심미주의적인 태도가 드러나 있다. 인상주의는 자기중심적인 심미적 문화의 정점으로, 실제적이고 활동적인 삶에 대한 낭만주의적 체념의 극단적 귀결을 의미한다. -256p
2장. 영화의 시대
조이스는 사건의 흐름 대신에 상념과 연상의 흐름을, 개인으로서의 주인공 대신에 의식의 흐름과 끝없이 계속되는 내면적 독백을 그린다. 그가 강조하는 것은 그 움직임의 연속성이고 이른바 '이질적 연속체'이며 붕괴된 세계의 만화경 같은 모습이다. 무엇보다 강조되는 것은 의식내용의 동시성이며, 또한 개인과 종족과 인류 전체, 과거의 현재성, 여러가지 다른 시점들의 뒤섞임과 내면적 체험의 변화무쌍한 유동성, 영혼을 싣고 흐르는 시간의 흐름의 무한성, 시간과 공간의 상대성, 즉 주체가 그 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여러 매개체들을 이제 더이상 분별하거나 제약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 새로운 시간관 속에 현대예술의 소재를 이루는 실마리가 거의 전부 집약되어 있다. 소설 줄거리의 포기, 주인공 인물의 제거, 심리소설의 와해, 초현실주의의 '자동기술법', 그리고 무엇보다도 영화의 몽타주 기법 및 시공간을 혼합한 형식을 들 수 있다. 새로운 시간 개념의 기본 요소는 '동시성'이며 그 본질은 시간적 요소의 공간화인데, 이런 시간 개념은 제일 젊은 예술이자 베르그송의 철학과 거의 같은 시기에 탄생한 장르인 영화예술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표현되었다. 영화의 수법과 새로운 시간 개념의 특징은 너무나 완벽하게 일치해서 현대예술의 시간 범주가 영화의 정신에서 태어난 것처럼 느껴지며, 현대예술에서 영화가 비록 질적으로 가장 풍부한 장르는 못 되더라도 표현양식 면에서 가장 대표적인 장르라고까지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364p
*보나파르티즘(Bonapartisme) : 나폴레옹 숭배 또는 그가 취한 정치형태. 정치적으로는 농민과 도시 중산층을 기반으로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의 조정자처럼 가장한 근대적 독재정치를 가리킨다.
* 스탕달의 벨리즘(beylisme, 스탕달이 작품에서 표방한 낭만주의 경향의 생활철학으로 권력숭배를 기조로 한다) / 발자크의 스노비즘(snobbism, 귀족숭배 및 속물근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