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ust, 2017
1. 시민이 주(主)가 되지 못한 채 온통 관계자에 대한 찬양으로 가득한 행사는 마치 그들만의 축제에 들러리로 참가하는 기분을 맛보게 했다. 전광판에 화려하게 선전하는 경제효과를 기대한다면 이따위로 진행하면 안 되지. 거창한 소개에 전혀 못 미치는 초라한 본무대는 천박한 이 도시와 너무나도 닮아있어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표현한 희극 한 편을 관망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우리 사회가 보여주는 키치함의 축소판인 것 같다.
2. 길가에 서있는 가로수, 그게 바로 내 모습 같다. 무심히 스쳐 지나가는 사람과 차들 속에서 나를 발견해 줄 사람을 기다리며 우두커니 서있는. 오늘같이 비 내리는 밤에는 더 외롭지 않을까, 쓸쓸하지 않을까. 전선에 의지한 채 서로 연결되어 있으려 발버둥 치는 그림자가 애처롭다.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가는 이 우울감의 정체는 뭘까. 저 멀리 피어오르는 물안개처럼 아침이면 곧 흩어져버릴까. 사라져버리고 싶다. 끝없는 어둠을 헤매고 있는 느낌이다.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이대로 흩어져버렸으면. 아침이 밝지 않기를. 변명으로 쌓아올리는 나날들이 깨져버리기를. 그러면 나는 산산조각 난 세계를 다시 쌓아올려야만 할까. 또다시 반복해야만 하는 걸까. 언제쯤이면 이 지긋지긋한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3. 자꾸만 꿈에 무의식이 반영된다. 나도 모르게 받고 있었던 압박과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고 싶다. 생활에 성실함이 필요한 때이다.
4. 나는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가 비관주의자이자 회의주의자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이 사회에 대한 불신과 환멸로 가득 찬. 하지만 진실된 나는 감정적으로 완벽하게 낭만주의자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최근 들어 하기 시작했다. 혼잡하게 돌아가는 세상과는 동떨어져 자아를 탐구하고 상념에 젖어들기 원하는. 결국 현실에 눈을 돌리고 자기만의 낙원에 빠져 살길 원한 비겁한 자의 변명이었나 보다.
5. 내가 경멸하는 인물 군상 가운데 하나는 그때그때 매체에서 이슈가 된 화제에 대하여 평소에는 그다지 관심도 두지 않았고, 깊이 알지도 못하는 주제에 거드름을 피우며 아는 척 설명하려는 유형이다. 그리고 이런 유형의 사람들 중 대다수는 대화보다는 지식 뽐내기에 여념이 없고 밑천이 드러나거나 자신이 무지한 분야와 마주하게 되면 두서없이 더듬거리며 급격히 말수가 줄어들기 일쑤다. 각 분야에 진정으로 조예가 깊은 사람은 오히려 자신의 무지를 부끄러워하고, 얄팍한 정보에 기대는 사람은 자신의 앎을 자랑스레 선보인다. 그리고 이 사소한 차이가 결코 뛰어넘을 수 없는 인격의 성숙함을 결정짓는다. 감정을 배제한 채 담담히 서술하려고 노력했지만 사실 뭣도 모르는 것들이 아는 척 하면서 나댄다, 라는 말로 간단히 요약할 수 있겠다.
6. 요즘 아주 체중이 순조롭게 쑥쑥 줄어들고 있다. 체중 변화가 그다지 크지 않은 타입이라 성장이 멈춘 고등학생 이후로는 힘내서 다이어트를 하지 않는 이상 큰 변동 없이 거의 일정했던 것 같은데 이러다가 인생 최초로 앞자리 4를 찍을 수 있을 것 같다. 집 떠나 살다가 몇 년 만에 돌아와서 엄마가 해주는 밥 꼬박꼬박 챙겨 먹으니 쓸데없는 간식 먹을 일도 없어, 눈치 보여서 밤늦게까지 술 마시러 나다니지도 못해, 치킨이나 피자 같은 배달음식도 안 시켜 먹어. 이거 완전 건강한 생활의 표본이네. 뭐 어차피 이러다가 스트레스를 통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 폭식을 해버리고 언제나의 몸무게로 돌아가겠지. 한순간의 방심이 몸을 망쳐버립니다.
7. 귀뚜라미와의 사투. 매일 밤마다 창문에 찾아와 세레나데를 불러대는 귀뚜라미 때문에 미쳐버릴 지경이다. 여기는 내 구역이니까 다른 데 가서 울란 말이야. 결국 소음과 다를 바 없는 이른바 자연의 힐링 사운드에 대항하기 위하여 인간이 만들어낸 예술적 산물의 집합체라고 할 수 있는 클래식을 틀었다. 이렇게 이루어진 두 음악 간의 투쟁이 아주 격렬하다.
8. 인생이 아주 쓰레기 같을 때 블로그를 열심히 하게 된다. 내가 이렇게 헛일을 하며 시간을 낭비했다는 증거라도 남겨야 하지 않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