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리 (한국)

에세이|어크로스|2017

★★★☆






어린 시절 나는 새 학기가 시작될 때마다 과거를 지우고 새롭게 태어나고 싶었는데 영화는 내가 유일하게 아는 (잠을 제외한) 임사체험이자 임생(臨生)체험을 제공했다. 바깥 세계와 나를 단절하고 어둠 속에 숨죽이고 있으면 "빛이 있으라!"라는 신의 명이 떨어진 듯, 영사실 창에서 백광이 쏟아지고 하나의 생애가 시작된다. 그것은 나의 삶이 아니지만 앞에 썼듯 딱히 나의 삶이 아닌 것도 아니다. 영화 한 편 안에도 무수한 삶과 죽음이 있다. 테이크는 지속되는 동안 현재 진행형의 삶이며 편집은 한 쇼트의 죽음이자 다음 쇼트의 탄생이다. 죽음이 삶에게 그러하듯, 쇼트가 끝나기 전에 우리는 그 생의 의미를 깨닫지 못한다. 인간은 삶에 포함돼 있지 않을 때 그것의 진정을 조감할 수 있다. 그래서 예술이 유용하다. - 서문



너에게.

네가 이 비밀을 알까? 모든 영화는 각기 다른 종류의 글을 쓰고 싶게 해. 어떤 영화는 귓전에 격문을 불러줘서 받아쓰게 되고, 또 다른 영화는 기도문을 짓고 싶게 만들어. <늑대아이>를 처음으로 본 저녁에 나는 아직 작곡되지 않은 노래의 가사 같은 걸 끄적이고 싶었어. 그리고 두 번째로 <늑대아이>를 보러 간 날 밤에는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네가 옆자리에 있고 극장엔 오직 우리뿐이어서 네게 "아! 이 부분은 마치…"라고 토를 달 수 있다면 얼마나 즐거울까 상상했어. 바로 지금 이 편지를 쓰고 있는 이유야. - 늑대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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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OYOUN SK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