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쓰메 소세키 (일본)
소설|현암사|2016
*こころ
★★★★
"예전에 그 사람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는 기억이 이번에는 그 사람 머리 위에 발을 올리게 하는 거라네. 나는 미래의 모욕을 받지 않기 위해 지금의 존경을 물리치고 싶은 거지. 난 지금보다 한층 외로울 미래의 나를 견디는 대신에 외로운 지금의 나를 견디고 싶은 거야. 자유와 독립과 자기 자신으로 충만한 현대에 태어난 우리는 그 대가로 모두 이 외로움을 맛봐야 하는 거겠지." -50p
나는 그때까지 망설였던 내 마음을 눈 딱 감고 상대의 가슴에 부딪쳐볼까 하는 생각을 했네. 내 상대는 아가씨가 아니었어. 아주머님이었네. 아주머님에게 따님을 달라고 확실하게 담판을 짓자고 생각했던 거지. 하지만 그런 결심을 하고서도 하루하루 결행을 미루고 있었네. 이렇게 말하면 나는 정말 우유부단한 사람으로 보이겠지. 그렇게 보여도 상관없지만 실제로 내가 결행하지 못한 것은 의지력이 부족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네. K가 들어오기 전에는 남의 손에 놀아나는 게 싫다는 고집이 나를 억눌러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지. K가 들어온 뒤에는 어쩌면 아가씨가 K에게 마음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끊임없이 나를 제지했네. 과연 아가씨의 마음이 나보다 K에게 기울어 있다면 이 사랑은 입 밖에 낼 가치가 없는 거라고 나는 결심했지. 창피를 당하는 것이 괴롭다는 것과는 좀 다른 거였어. 내가 아무리 좋아한다고 해도 상대가 마음속으로 다른 사람에게 사랑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면 나는 그런 여자와 결혼하기는 싫었네. 세상에는 다짜고짜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고 기뻐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것은 우리보다 훨씬 세상에 닳은 남자거나 아니면 사랑의 심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둔한 사람이나 하는 짓이라고 당시의 나는 생각했다네. 일단 결혼을 하고 나면 그럭저럭 안정되는 법이라는 이치를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로 나는 열중해 있었지. 다시 말해 나는 아주 고상한 사랑의 이론가였던 거네. 동시에 가장 에둘러 가는 사랑의 실천가였던 셈이지. -223p
이렇게 말하면 아주 간단하게 들리겠지만 그런 마음의 과정에는 밀물과 썰물처럼 여러 가지로 크고 작은 일들이 있었다네. 나는 K가 움직이지 않는 모습을 보고 거기에 이런저런 의미를 부여했지. 아주머님과 아가씨의 언동을 관찰하고 두 사람의 마음이 과연 그 언동에 나타난 대로일까 하고 의심해보기도 했네. 그리고 인간의 가슴속에 장치된 복잡한 기게가 시곗바늘처럼 명료하게 거짓 없이 시계판 위의 숫자를 가리킬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지. 요컨대 같은 문제를 이렇게도 생각하고 저렇게도 생각한 끝에 결국 그런 결론에 이른 것이라고 생각해주게. 좀 더 어렵게 말하자면, 결론에 이르렀다는 말은 결코 그럴 때 써서 안 되는 것인지도 모르지. -234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