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 (한국)
예술|휴머니스트|2008
★★★☆
체계론 / 형태(1)-색채(2)-투시법(3,4,5)-내용(6)-정신(7)-형식(8)-비평가(9,10)-혁명(11)-고전예술붕괴(12)
학설사 / 고대(1)-중세(2)-르네상스(3,4,5,6)-마니에리스모(7)-바로크(8)-로코코(9)-신고전주의(10)-낭만주의(11)-모더니즘(12)
2. 색과 빛의 황홀경
중세인은 감각적 물질로 초감각적 세계를 상징하려 했다. 재료의 물질성이 초월적 의미를 말한다. 이는 일종의 '알레고리(allegory)'라고 할 수 있다. 알레고리란 본디 '다른 것을 말하다'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중세인은 우리보다 자연을 한 꺼풀 더 깊숙이 보았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세계의 모든 것 속에 눈에 보이지 않는 의미가 감추어져 있다고 믿었고, 그리하여 눈으로 보는 색채 하나하나에 모두 의미를 부여했다. ⇒ 상징주의
어떤 의미에서 '실재(reality)'란 합의된 세계인지도 모른다. 우리에게는 눈에 보이는 세계가 유일한 실재지만, 중세의 그것은 유일한 실재도, 중요한 실재도 아니었다. 중세의 '합의된' 진정한 실재는 감각 너머에 존재하는 초월적인 세계였기에, 가시적 세계를 보이는 대로 재현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었다. 이는 현대 예술이 처한 상황을 닮았다. 카메라의 등장 이후 현대 예술에서도 재현은 의미를 잃었기 때문이다. 미술사가 아순토는 여기서 중세 예술과 현대 예술 사이의 평행선을 본다.
실제로 둘은 닮았다. 가령 중세 예술이 가시적인 것을 넘어 비가시적인 세계를 드러내려 했다면, 현대 회화 역시 '가시적인 것을 재현하는 게 아니라 비가시적인 것을 가시화' (파울 클레)하려 한다. 중세 예술이 가장 중요한 의미를 형식(빛과 색)에 담아 전달했다면, 현대 예술에서도 '내용은 형식 속에 침전' (아도르노)된다. 르네상스 이후 고전 예술의 창작 과정이 '내용+형식' 이었다면, 고전 예술 이전의 중세 예술과 고전 예술 이후의 현대 예술에서는 창작이 '재료+처리'의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또한 중세의 색채 효과는 현대의 표현주의를 닮았고, 중세 디자인의 기하학적 프레임은 현대의 추상에 가깝다. 형과 색에 상징적 의미를 결부시키는 것은 칸딘스키를 닮았고, 한 공간에 이미지와 텍스트를 병치시키는 것은 파울 클레를 닮았다. 사물이자 기호였던 중세의 공예품은 다다의 레디메이드를 연상시켰고, 아직 원근법을 몰랐던 중세의 회화는 다(多)시점의 큐비즘을 실천했다. 또 장인들의 민중적 상상력은 현대의 초현실주의처럼 실재와 상상의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들었다.
3. 자연을 내다보는 창문
거미줄처럼 눈에서 뻗어나간 시선의 가닥들이 묘사 대상에 들러붙으면 대상과 눈 사이에 원추형의 모양이 생긴다. 이를 '시각 피라미드'라고 부른다. 이 피라미드를 중간에서 절단하면 대상의 윤곽이 얻어진다. 물론 그 윤곽은 대상에 가까울수록 커지고, 눈에 가까울수록 작아질 것이다. 이와 같은 시각적 재현의 광학적 원리에서 알베르티는 곧바로 회화의 정의를 끄집어낸다.
회화란 주어진 거리, 주어진 시점, 주어진 조명 밑에서 시각 피라미드의 횡단면으로 구성된 평면 위에서 선과 색을 사용해서 이루어진 예술적 재현입니다.
"시각 피라미드의 횡단면을 취하라. 그러면 제 아무리 복잡한 대상이라도 재현할 수 있다." 이는 사실 카메라가 작동하는 기계적 원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5. 물구나무선 원근법
하나의 시점을 사용하는 서구 원근법과 달리, 러시아의 역원근법은 두 개의 시점을 하나로 합친 '운동지각'을 구현한다. 가령 책상을 볼 때 우리는 정면만 보지 않고, 걸음을 옮겨 왼쪽 측면도 보고, 오른쪽으로 돌아가 우측면도 확인한다. 이렇게 책상을 왼쪽에서 본 모습과 오른쪽에서 본 것을 하나로 합치면, 한 장의 그림에 좌측면과 우측면이 동시에 보이게 된다. 그러면 당연히 책상의 앞쪽은 짧게, 뒤쪽은 길게 묘사될 것이다.
역원근법에서는 대상에 따라 시점이 바뀌고, 때문에 한 화면 안에 여러 개의 이질적인 공간들이 공존하게 된다. 문제는 이 공간들이 서로 충돌한다는 데 있다. 역원근법의 '감추어진' 형태는 이 충돌을 해결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다. 러시아의 장인들은 역원근법의 '드러난' 형태와 '감추어진' 형태를 교대로 사용해야 했다.
+) 큐비즘
17세기쯤이면 서구 르네상스의 물결은 러시아에까지 당도하게 된다. 서구의 선원근법 묘사를 접한 러시아의 장인들은 자신들의 묘사 방식이 낙후됐다고 느낀 모양이다. 그리하여 투시법의 철저한 적용에서 비롯된 균열들을 화면에 그대로 드러내던 당당함을 잃어버리고, 시각적 민망함을 피하기 위해 공간의 충돌로 생긴 균열들을 여러 가지 대상을 이용해 슬쩍 가려놓기 시작한다. 이 과도기를 거친 후에는 러시아 장인들도 서구의 선원근법을 받아들이게 된다.
공간의 균열을 슬쩍 가리는 트릭은 세잔을 연상시킨다. 세잔은 일찍이 서구 원근법의 규약이 우리의 일상적 지각과 다르다는 것을 예민하게 의식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정물을 그릴 때 그는 대상 하나하나마다 시점을 바꾸어 그리곤 했다. 그리고 거기서 비롯되는 공간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균열이 생기는 부분에 꽃병이나 테이블보로 슬쩍 덮어 가리곤 했다. 그 균열을 가리지 않고 과감하게 드러내려 했을 때 바로 큐비즘이 탄생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6. 도상학에서 도상해석학으로
전(前)도상학적 단계 |
도상학적단계 ←현상학적 수준 |
도상해석학적단계 |
사실의미-지각능력|표현의미-심리적,감수성 1차적/자연적의미 교정원리로서 양식사 ex) 중세와 르네상스 |
사회적 맥락에 대한 이해 2차적/관습적 의미 교정원리로서 유형사 ex) <신약성서> 살로메, <외경> 유디트 |
의미해독 (시대나 국적, 게층, 지적전통 등을 유추) 본래적 의미 교정원리로서 상징사 ex) 십자가 책 |
르네상스를 흔히 고대의 부활이라고 하나, 중세에도 고대는 완전히 잊히지 않았다. 중세의 장인들 역시 고대의 모티프를 차용했고, 때로는 직접 고대적 주제를 다루었다. 그저 모티프와 주제가 서로 엇갈렸을 뿐이다. 이렇게 제재와 주제가 엇갈릴 수 있기에, 도상해석학적 단계에도 교정 원리가 필요하다. 하나의 제재를 특정한 세계관의 표현으로 읽으려면 '문화적 징후와 상징의 역사'를 이해해야 한다.
7. 엘 그레코, 신학적 가상현실
현세의 포기는 어디서 비롯된 현상일까? 당시의 세상은 물질주의가 범람하고 있었다. 교회도 예외는 아니었다. 물질주의에 빠진 가톨릭교회의 타락은 결국 종교개혁의 물결을 낳늗나. 하지만 종교개혁 역시 교회에서 물질주의를 추방하는 데에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세상의 물질주의와는 쉽게 타협하고 말았다. 이 범람하는 물질주의가 화가들로 하여금 현실에서 아예 눈을 돌리게 만든 것이다.
에술양식을 일컫는 다른 이름들처럼 '마니에리스모'도 원래는 부정적 뉘앙스를 갖는 경멀어였다. '매너리즘'이라는 말은 여기서 비론된 것이다. 한마디로 마니에리스모란 화가들이 매너리즘에 빠져 영감을 얻기 위해 자연에 의뢰하기보다는 전적으로 전통 형식들을 재활용하는데 의존하던 시기라는 것이다. 물론 실제로 그런 측면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그것을 그저 창의성이 결여된 예술적 타성으로만 보는 것은 마니에리스모의 진정한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당시는 고대 그리스의 고전 예술이 부오기하던 시기와 닮았다. 이 위기의 시기에 예술에서는 두 개의 경향이 발생한다. 하나는 현실에서 시적 분위기를 걷어내고, 위기를 낳은 사회적, 심리적 조건을 냉정하게 파악하는 귀납적 경향으롤, 라블레와 브뤼헐, 셰익스피어, 그리고 훗날 발자크와 도스토예프스키가 걷게 되는 길이다. 다른 하나는 현실에서 아예 눈을 돌리고 영적인 세계를 관조하고 명상하며 법열에 빠지려 하는 연역적 경향으로, 프랑스와 스페인의 마니에리스트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엘 그레코가 보여주는 것은 현실의 재현이 아니라 초현실의 비전이다.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이라는 작품에서 백작의 사체를 입관하는 두 성자, 그리고 하늘나라에 받아들여지는 백작의 영혼. 이 두 가지는 오직 '광기'에 가까운 종굑적 열정으로만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림에서도 이 두 장면은 신심이 돈독한 성직자와 어린아이의 천진난만한 눈에만 보이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하지만 그 두 사람 외에도 저 초월적 세계의 비전을 보는 이가 또 있다. 바로 관람자이다. 엘 그레코는 관람자로 하여금 자신의 환상을 체험하게 함으로써, 그들의 영혼을 구름에 난 좁은 틈새로 하늘나라에 들어가게 만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