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울프 (영국)
에세이|민음사 쏜살문고|2016
*A Room of One's Own
★★★☆
어쩌면 그들은 전혀 '분노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사적인 인간관계에서 종종 그들은 여성에게 헌신적이며 모범적인 찬미자들입니다. 그 교수가 여성의 열등함에 대해 좀 지나치게 힘주어 주장했을 때 어쩌면 그는 여성의 열등함보다는 자기 자신의 우월함이 손상되지나 않을까 더 염려하고 있었을 겁니다. …어느 성에게나 삶은 힘들고 어려운 영속적인 투쟁입니다. 그것은 어마어마한 용기와 힘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우리같이 환상을 지닌 피조물에겐 그것은 아마 다른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필요로 할 겁니다. 자신감이 없다면 우리는 요람에 누운 아기와 마찬가지이지요. 이 측정할 수 없이 가벼운, 그러나 무한한 가치가 있는 자질을 어떻게 해야 가장 신속하게 획득할 수 있을까요? 다른 사람들이 자신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함으로써 가능하겠지요. 자기 자신에게 다른 사람보다 천성적으로 우월한 점이 있다고 느낌으로써 가능할 겁니다. 그러므로 통치해야 하고 정복해야 할 가장에게 있어서 다수의 사람들, 사실 인류의 절반이 자신보다 열등하다고 느끼는 것은 막대한 중요성을 가질 겁니다. 그것이 실상 그의 권력의 중요한 원천 중 하나겠지요. -59p
셰익스피어에게 놀랄 만한 재능을 가진 누이, 이를테면 주디스라 불리는 누이가 있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를 상상해 보도록 하지요. …셰익스피어와 마찬가지로 그녀는 연극에 소질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무대 출입구에 서서 연기를 하고 싶다고 말했지요. 남자들이 그녀의 면전에서 폭소를 터뜨렸습니다. 감독은 너털웃음을 쳤습니다. 그리고 여자가 연기를 하는 것은 푸들이 춤추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내뱉고는 어떤 여자도 배우가 될 수 없다고 단언했지요. 그가 넌지시 암시했는데, 여러분은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 상상할 수 있을 겁니다. 그녀의 재능은 훈련을 받을 수 없었지요. 그녀가 선술집에서 저녁을 먹거나 한밤중에 길거리를 배회할 수 있었을까요? 하지만 그녀의 재능은 픽션을 추구했고, 남자들, 여자들의 삶과 그들의 생활 방식을 풍부하게 보고 관찰하기를 갈망했습니다. 마침내 배우 감독인 닉 그린이 그녀를 동정했습니다. 그녀는 그 신사의 아이를 임신했음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시인의 마음이 여자의 몸속에 갇혀서 엉망으로 뒤엉켜 있을 때 그것이 분출할 열기와 격렬함을 누가 측정할 수 있겠습니까.) 어느 겨울밤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며 지금은 엘리펀트 앤 캐슬 바깥쪽의 버스 정류장 근처 교차로 어딘가에 묻혀 있습니다. -75p
문학 작품에 나타난 여성들 간의 관계는, 문학 작품에 전시된 빛나는 허구의 여성들을 재빨리 회상하면서 생각하건대, 너무나 단순합니다. 아주 많은 부분이 생략되었고 시도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거의 예외 없이 여성은 남성과 맺는 관계를 통해서만 제시됩니다. 제인 오스틴의 시대까지 픽션의 모든 위대한 여성들이 다른 성의 눈으로 보였을 뿐 아니라 다른 성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보였다는 것은 참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남성과의 관계는 여성의 삶에서 아주 자그마한 부분밖에 차지하지 못하는데 말이지요. 게다가 남성이 검거나 붉은 성적 편견의 안경을 코에 걸치고 그 관계를 관찰할 때 그들은 그 관계에 대해서조차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아마도 이런 이유로 픽션의 여성들은 특이한 성격으로 나타나겠지요. 놀랄 만큼 극단적으로 아름답거나 극단적으로 혐오스러운 존재이고, 천사 같은 선함과 악마 같은 사악함 사이에서 동요합니다. 한 남성이 자신의 사랑이 상승하는가 침체하는가에 따라서, 또는 순조로운가 그렇지 않은가에 따라서 여성을 보기 때문이지요. -123p
'리얼리티'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것은 일정치 않은 어떤 것, 다분히 의존할 수 없는 어떤 것으로 보일 겁니다. 때로 먼지투성이의 길에서, 때로는 거리에 떨어진 신문 조각에서, 때로 햇빛을 받고 있는 수선화에서 리얼리티를 발견할 수 있겠지요. 그것은 또한 방에 있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비춰 주고, 어떤 우연한 말 한마디에도 강한 인상을 받도록 합니다. 그것은 별빛 아래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누군가를 압도하여 그 고요한 세계를 대화의 세계보다 더 리얼한 것으로 만들어 줍니다. 그리고 또 그것은 떠들썩한 피커딜리가의 버스 안에도 존재하지요. 때로 그것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그 본질이 무엇인지 식별할 수 없는 형체들 속에 머무르는 듯합니다. 그러나 리얼리티가 손대는 것은 무엇이든지 고정되고 영원해집니다. 그것이야말로 하루의 껍질이 울타리 밖으로 던져질 때 뒤에 남는 것이고, 지나간 시간과 우리의 사랑과 증오에서 남는 것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바로는, 이제 작가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욱 풍부하게 이러한 리얼리티 속에서 생활할 기회를 갖게 됩니다. 리얼리티를 찾아내어 수집하고 그것을 여타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작가의 의무이지요. -159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