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국, 절대와 자유
2017.04.13(목)
부산시립미술관
유영국의 작품에서는 점, 선, 면, 형, 색 등 기본적인 조형요소가 주인이 되어 등장한다. 이들은 서로 긴장하며 대결하기도 하고, 모종의 균형감각을 유지하기도 함으로써, 그 자체로 강렬한 에너지를 발산한다.고향 울진의 깊은 바다, 장엄한 산맥, 맑은 계곡, 붉은 태양 등을 연상시키는 그의 작품은 사실적인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 담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추상화된 조형의 힘은 오히려 더욱 더 직접적으로 자연의 '정수(essenoe)'에 다가가는 체험으로 관객을 이끈다.
[1916-1943 도쿄 모던]
일본 체류기 유영국의 작품은, 베니어판을 자르고 이어 붙여서 단순화된 기하학적 형태만으로 ‘구성된’ 부조(浮彫)들이다. 색채마저 배제된 무채색의 오브제에는 나무의 자연스런 패턴이나 매끈하게 처리된 광택의 표면만이 떠오를 뿐이다. 한편, 그는 오리엔탈사진학교에서 수학하는 등 사진에 대한 관심도 매우 높았으며, 일제 당국이 ‘추상’미술을 탄압할 때에는 사진 작품을 전시에 출품하기도 했다.
[1943-1959 ‘추상’을 향하여]
1948년 신사실파, 1957년 모던아트협회, 1958년 현대작가초대전 등 척박한 한국의 풍토 속에서도 가장 전위적인 미술단체를 이끌었다. 이 시기 그의 작품은 ‘회화’로 돌아와 산, 언덕, 계곡, 노을 등 일상적으로 만나는 자연의 요소들을 점차적으로 추상화해나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형태를 단순화하고, 절묘한 색채의 조화를 추구하되, 마티에르 즉 표면의 재질감을 최대한 살리는 방식을 탐구해 나갔다.
[1960-1964 장엄한 자연과의 만남]
이 시기 그의 작품은 매우 힘차고 자신감에 넘친다. 거대한 산수를 마주대하는 듯한 큰 화면에는 조감도적인 시점으로 내려다 본 온갖 계절의 생동감 넘치는 자연이 펼쳐진다. 특히 1964년 한 해 동안 개인전 발표를 앞두고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하며 제작된 그의 작품들은, 관객들로 하여금 마치 깊은 숲 속에 빨려들어 갈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작품들이 작가의 7평 크기 약수동 화실에서 제작되었다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이다. 그는 작은 화실에서 장엄한 자연의 힘과 마주하며, 그것이 발산하는 에너지의 정수를 화폭에 옮겨 놓았다.
[1965-1970 조형실험]
1970년대 중반 예순이 될 때까지 끊임없이 일종의 조형실험을 계속했다는 것을 작품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형태는 비정형(比定形)적인 것에서부터 점차적으로 기하학적인 형태로 나아간다. 색채는 노랑, 빨강, 파랑 등 삼원색을 기반으로 하되 유영국 특유의 보라, 초록, 등 다양한 변주(variation)가 구사된다. 심지어 같은 빨강 계열의 작품에서도, 조금 더 밝은 빨강, 진한 빨강, 탁한 빨강, 깊이감 있는 빨강 등 미묘한 차이를 지닌 동시에 절묘한 조화를 이루어낸다. 이로써 회화적 아름다움이 다다를 수 있는 최고의 경지에 도달해간다.
[1970-1990년대 자연과 함께]
“자연에 좀 더 부드럽게 돌아간” 평화롭고 아름다운 그림들이 끊임없이 제작되었다. 그의 마지막 작품들은 주변 어디에서나 마주칠 수 있는 자연의 소박한 서정성을 표현한 것들이다. 산과 나무, 호수와 바다, 지평선과 수평선, 무엇보다 해와 달이 비추이는 화면은 지극히 조화롭고 평화로운 모습으로 완벽한 ‘평형상태(equilibrium)’를 향해간다. 죽음의 문턱에서의 삶의 세계로 돌아올 때마다 마주친 유영국의 캔버스는 생(生)에 대한 따뜻한 위로를 관객에게 선사하는 것이다.
1940
© 유영국미술문화재단
1964
© 유영국미술문화재단
1964
© 유영국미술문화재단
1967
© 유영국미술문화재단
1968
© 유영국미술문화재단
1999
© 유영국미술문화재단
“산은 내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