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 휘쇼의 예민미와 더불어 화면을 채우는 담배연기를 타고 흐르는 재즈 선율로 이루어진 드라마. 초반부에는 급격하게 이루어지는 사건의 전개를 그저 쫓아가기 바쁘지만 하나, 둘씩 던져주는 정보들을 천천히 주워 담다 보면 앞서 착실하게 이루어진 사전 작업들 덕분에 후반부에 이르러 이 모든 것들이 한데 어우러져 폭발적인 흡입력을 자랑한다. 개인적으로 언론 드라마를 표방한 스파이물이었던 시즌1보다는 본격적으로 지저분한 정치판을 다룬 시즌2가 더 흥미진진했는데 고작 두 편만에 이민자 문제를 비롯한 파시스트 및 핵문제, 페미니즘과 동성애를 다뤘다는 것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이 드라마에서 다루는 내용들이 너무나 선구적이라 나같은 소시민은 그저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달까. 또 사건을 끈질기게 쫓는 프레디의 기자정신을 높이 평가했던 시즌1과는 달리 시즌2에서는 프레디의 직업정신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하는 동시에 어떠한 기자상이 무조건 '옳다'고 강조하지 않으면서 언론 드라마로서의 본질을 잃지 않는 점도 좋았다.


디 아워를 감상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걸림돌은 이집트 수에즈 운하와 헝가리 혁명이라는 역사적 사건과 함께 맥밀런, 아이젠하워를 비롯한 당대의 정치인들과 문인들의 이름이 자주 등장함에 따라 이를 파악하기 위해 잠시 동안의 일시정지 사태가 종종 일어난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사건과 인물들에 대한 배경지식이 약간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머나먼 바다 건너 당시 영국 내 정세와 연결해서 이해해야 한다는 점은 무척이나 힘들었다. 여기에 드라마 속 등장인물들이 서로를 성과 이름으로 섞어서 불러대는 덕분에 (매든은 헥터이고, 벨은 로울리지) 얼굴과 이름을 제대로 매치하지 못하는 나같은 안면인식 장애를 가진 사람은 드라마도 못 보겠네, 싶었다. 뭐 다음번에 한 번 더 정주행 할 때는 그나마 매끄럽게 볼 수 있으려나.


시즌1에서는 프레디가 극 전반을 홀로 이끌어나감에 따라 등장하는 인물들의 수에 비해 캐릭터 활용이 부족했던 점이 조금 아쉬웠는데 스파이물을 벗어난 이후로는 캐릭터들이 다면적으로 다뤄지기 시작하면서 드라마의 활력이 더해진 것 같다. 특히 극 중에서 헥터는 미남으로 나오지만 그의 매력을 전혀 느낄 수 없었는데 시즌 후반부에 이르러 어떻게 보면 참 단순하고 솔직한 황소 같은 사람이라 주변에 사람이 끊이지 않구나, 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 무엇보다 자신의 과오를 후회하고 열정적인 사람들을 바라보며 자괴감을 느끼는 그 모습에서 어떻게 보면 우리들은 프레디나 벨보다는 헥터와 가까운 삶을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싶어서 조금은 씁쓸하면서도 도저히 미워할 수가 없었다. 벨의 경우에는 배우 로몰라 가레이의 시선을 사로잡는 미모와 분위기, 캐릭터의 당당함에 걸맞는 원색의 화려한 스타일이 더해져 특유의 고풍스러움에 푹- 빠졌지만 헥터와의 관계나 프레디를 대하는 모습에서 실망해 후반으로 흘러갈수록 오히려 마니가 더 매력적인 여성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시즌2에 들어서는 브라운씨의 열렬한 추종자가 되었는데 중후한 목소리와 냉정한 분석력과는 달리 정리벽이 있으신게 포인트. 그리고 맥케인!! 정말 현실적이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데도 불구하고 왠지 모르겠지만 나쁘게 볼 수가 없었다. 박쥐같은 정치인들의 모습에 신물이 날 정도라 자신의 입장을 위해서 계산적인 모습이 한결같아서 더 좋았달까. 마지막으로 디 아워 그 자체라고 말할 수 있는 프레디는 개인적으로 알고 지낸다면 참 성가셨겠지만 기자로서 소명 의식을 갖고 진실을 위해 달려가는 프레디는 정말 매력적인 인물이었다.


좋은 소재에 매력적인 배우들, 각각의 개성이 살아있는 캐릭터, 영국 빈티지를 그대로 드러내는 색감과 분위기, 그리고 군더더기 없는 연출까지. 이렇게 완벽한 드라마를 시즌2를 끝으로 캔슬하다니 BBC는 도대체 생각이 있는건지 없는건지ㅠㅠㅠㅠㅠ 아무리 괜찮은 드라마라도 조금만 시청률이 나오지 않는다 싶으면 가차없이 캔슬시켜버리는 건 BBC의 고질병인 듯. 시즌2의 충격적인 엔딩 이후 프레디는 물론 살아남았겠지만 앞으로 프레디x벨의 관계가 어떻게 변화할지도 궁금하고, 브라운씨가 이끌어가는 디 아워 팀의 모습도 더 보고싶은데. 벤 휘쇼 데려다가 런던 스파이 찍을거면 디 아워 시즌3나 만들어주지,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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