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카 (영국)

역사|까치|2015

*What Is History?

★★★




1.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

역사적 사실(historical fact)이란 무엇인가? (중략) 그 기초적인 사실들을 확정해야 할 필요성이 사실 자체의 어떤 성질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역사가의 선험적 결정에 좌우된다는 것이다. 역사가는 필연적으로 선택을 하게 된다. …역사적 사실로서의 그것의 지위는 해석(interpretation)의 문제에 좌우될 것이다. 이 해석이라는 요소는 모든 역사의 사실에 개입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그림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특정한 견해에 물들어 있던, 그리고 그 견해를 뒷받침해주는 사실을 보존해야 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생각한 사람들이 우리를 위해서 이미 선택하고 결정한 것이지, 우연에 의한 것은 아니다.


콜링우드의 견해에 따르면 역사철학은 '과거 그 자체'에 관한 것이라거나 '과거 그 자체에 대한 역사가의 사유(思惟)'에 관한 것이 아니라 '상호 관련되는 그 두 가지'에 관한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역사는 사유의 역사'이며, '역사란 사유의 역사를 역사를 연구하고 있는 역사가가 그 사유를 자신의 정신 속에 재현하는 것'이다. 역사가의 정신 속에서 이루어지는 과거의 재구성은 경험적인 증거에 의존한다. 그러나 그 재구성 자체는 경험적인 과정이 아니며 또한 사실들의 선택과 해석을 지배한다.

이러한 비판은 간과되고 있는 몇 가지 진리들을 드러내고 있다.

첫째, 역사의 사실들은 순수한 형태로 존재하지 않으며 또한 존재할 수도 없기 때문에 우리에게 결코 '순수한' 것으로 다가서지 않는다는 점이다 : 그것들은 기록자의 마음을 통과하면서 항상 굴절된다.

두 번째는, 역사가는 자신이 다루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과 그들의 행위의 배후에 있는 생각을 상상적으로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 내가 '공감(sympathy)'이 아니라 '상상적인 이해(imaginative understanding)'라고 말한 이유는 공감이 동의(agreement)를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세 번째로, 우리는 오로지 현재의 눈을 통해서만 과거를 조망할 수 있고 과거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도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역사가는 그가 살고 있는 시대에 속하는 사람이며, 인간의 실존조건 때문에 자신의 시대에 얽매일 수 밖에 없다. 그가 사용하는 바로 그 말들은 그 시대의 함축적인 의미들을 가지고 있고, 그는 그 말들을 그 의미들과 분리시킬 수 없다.


역사란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의 끊임없는 상호작용 과정,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a continuous process of interaction between the historian and his facts, and unending dialogue between the present and the past)라는 것이다.



2. 사회와 개인

개별화(individualization)-인간성(human nature)-공리주의(功利主義, utilitarianism)-대중 민주주의(mass democracy)


하나의 사회혁명이 새로운 사회집단을 권력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그 혁명은, 언제나 그랬듯이, 개인들을 통해서 그리고 개인의 발전에 새로운 기회들을 제공함으로써 움직여나갔다 ; 또한 자본주의의 초기 단계에 생산과 분배는 대부분 개인 단위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새로운 사회체제의 이데올로기가 열렬히 강조한 것은 그 사회체제 안에서의 개인의 주도적 역할이었다. 그러나 그 과정 전체는 역사 발전의 어느 특정한 단체를 대표하는 하나의 사회적 과정이었으므로, 사회에 대한 개인의 반역이라든가 사회적 속박으로부터의 개인의 해방이라는 측면에서 설명될 수는 없다.


자유와 평등 사이의 또는 개인적 자유와 사회적 정의 사이의 긴장을 추상적인 용어로 말할 때, 우리는 추상적인 관념들 사이에서는 싸움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잊어버리기 쉽다. 싸움은 그런 추상적 개인과 추상적 사회 사이의 투쟁이 아니라, 사회 안에 있는 개인들로 이루어진 집단들 사이의 투쟁이며, 각각의 집단은 자기에게 유리한 사회정책은 추진하고 불리한 사회정책은 좌절시키려고 싸우는 것이다. 하나의 거대한 사회운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과 사회 간의 부당한 대립을 의미하는 개인주의는 오늘날 이익집단의 슬로건이 되어버렸고, 논쟁의 여지가 있는 그것의 성격 때문에 세계의 움직임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어버렸다.


역사는 그 말의 두 가지 의미에서―역사가가 수행하는 연구와 그가 연구하는 과거의 사실이라는 두 가지 뜻에서― 하나의 사회적인 과정이며, 개인은 그 과정에 사회적인 존재로서 참여한다 ; 그러므로 사회와 개인의 대립을 가정하는 것은 우리의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게 하여 우리의 사고를 혼란시키려는 미끼에 불과하다. 역사가와 그의 사실 사이의 상호적인 과정, 즉 내가 현재와 과거 사이의 대화라고 불렀던 그 과정은 추상적이고 고립적인 개인들 사이의 대화가 아니라 오늘의 사회와 어제의 사회 사이의 대화이다. 부르크하르트의 말을 빌리면, 역사란 '한 시대가 다른 시대 속에서 찾아내는 주목할 만한 것에 관한 기록이다. 과거는 현재에 비추어질 때에만 이해될 수 있다 ; 또한 현재도 과거에 비추어질 때에만 완전히 이해될 수 있다. 인간이 과거의 사회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 그리고 현재의 사회에 대한 인간의 지배력을 증대시키는 것, 이것이 역사의 이중적인 기능이다.



4. 역사에서의 인과관계

클레오파트라의 코 : 역사란 전체적으로 우연의 일치에 의해서 결정되고 가장 뜻밖의 원인에서만 유래하는 사건들의 연속이라는 이론


마르크스는 역사에서의 우연을 세 가지 측면에서 해명한 셈이다. 첫째, 우연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 말하자면 우연이 사건의 경로를 '가속시키거나' 또는 '지체시킬' 수는 있지만 근본적으로 변경시킬 수는 없다는 점이 암시되어 있다는 것이다. 둘째, 하나의 우연은 다른 우연에 의해서 상쇄되며, 그 결과 결국에는 우연이 저절로 소멸된다는 것이었다. 셋째, 우연은 특히 개인의 성격으로 설명된다는 것이었다.


결국 역사란 역사적 중요성이라는 측면에서 이루어지는 선택의 과정이다. 탤컷 파슨스의 말을 빌리면, 역사는 실체에 대한 인식적 지향들의 '선택체계(selective system)'일 뿐만 아니라 인과적 지향들의 '선택체계'이다. 역사가는, 끝없는 사실의 바다에서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중요한 것을 선택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무수한 인과적 전후관계들 중에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것을, 오직 그런 것만을 추출해낸다. 그 밖의 다른 인과적 전후관계들은 우연적인 것으로서 배제되어야만 하는데, 그 이유는 원인과 결과 사이의 관계가 특별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전후관계 자체가 적절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5. 진보로서의 역사

나는 '신비주의(mysticism)'란 역사의 의미를 역사 밖의 어딘가에서, 즉 신학이나 내세론의 영역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견해를 뜻하리라고 생각한다. '냉소주의(cynicism)'란 역사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혹은 유효하기도 하면서 동시에 쓸모없기도 한 수많은 의미들이 있다는, 혹은 우리가 마음대로 골라잡아 부여한 의미만이 있다는 견해를 뜻하는데, 이것들이 오늘날 아마 가장 인기 있는 두 가지 역사관일 것이다.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진보(progress)와 진화(evolution)이라는 명백히 모순되는 두 개의 견해들을 취했다. 그들은 인간의 위치를 자연계 안에서 해명하려고 애썼다 : 역사의 법칙이라는 것도 자연의 법칙과 동일시되었다. 다른 한편, 그들은 진보를 믿었다. …그러나 이것은 진화의 원천인 생물학적인 유전(biological inheritance)을 역사에서의 진보의 원천인 사회적인 획득(social acquisition)과 혼동함으로써 훨씬 더 심각한 오해에 이를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중략) 또한 우리는 진보에 일정한 출발점이나 종점이 있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으며 그렇게 생각해서도 안 된다. …만일 역사가가 진보라는 가설을 지키려고 한다면, 진보를 계속되는 여러 시대의 요구사항과 조건에 의해서 각 시대만의 특정한 내용이 채워지는 과정으로 기꺼이 간주해야만 한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야말로 역사는 진보의 기록이며 '진보적인 학문'이라고 말한 액턴의 명제, 혹은 역사는 그 말의 두 가지 의미―사건의 경과라는 의미와 사건의 기록이라는 의미― 모두에서 진보적이라고 말한 것이라고 해도 좋은 그 액턴의 명제의 의미이다.


역사의 사실들은 순수하게 객관적일 수 없는데, 왜냐하면 그것들은 역사가가 부여하는 의미에 의해서만 역사의 사실이 되기 때문이다. 역사에서의 객관성은 사실의 객관성일 수 없으며, 오로지 관계의 객관성, 즉 사실과 해석 사이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 사이의 관계의 객관성일 수 있을 뿐이다.


역사란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않는다 ↔ 역사의 의미는 무한하다 (=어떤 의미도 그것과 다른 의미보다 더 올바르지 않다)

pragmatist 실용주의자

나쁜 왕 존과 좋은 여왕 베스 이론(Bad King John and Good Queen Bess theory)

거대한 비인격적인 힘들 (vast impersonal forces)

인간의 행동은 '사물의 본성'에서 유래하는 어떤 법칙이나 원리를 따른다. - 몽테스키외 『로마인의 위대함과 쇠락의 원인에 관한 고찰』

실존(實存)은 어떠한 원인도, 이유도, 필연성도 가지지 않는다. - 사르트르 『존재와 무』

합리적인 것은 현실적인 것이고, 현실적인 것은 합리적인 것(what is rational is real, and what is real is rational) - 헤겔 『법 철학』

역사적 사유란 항상 목적론적이다


47
MYOYOUN SK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