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첼로 독주회
첼로 특유의 선율이 선사하는 묵직한 음들이 가슴 깊은 곳까지 와닿았다. 현란한 테크닉과 웅장하면서도 감미로운 곡들의 향연에 귀가 즐거웠지만 가장 좋았던 점은 첼리스트와 피아노 연주자 간의 교감이었다. 음악을 향한 열정을 마음껏 드러내면서 눈빛과 숨결을 주고받는 그들의 모습에 마치 비밀스러운 순간을 훔쳐보는 방해꾼이 된 듯해 괜스레 부끄러워졌다.
2. 투명인간 - 성석제
책을 읽으면서 내내 지긋지긋하다, 라는 감상 뿐이었다. 제목을 통해 받았던 나의 기대감을 완전히 박살내버린 작품. 한국 문단은 도대체 언제까지 이러한 내용의 글만 써댈 것인지 모르겠다. 어디선가 많이 들었던 이야기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듣고 있는 이야기들. 과거를 되돌아본다는 것은 물론 중요하지만 색다른 시각이나 관점없이 항상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하는 데에 지쳤다. 투명인간에는 참으로 일차원적인 사고로 그저 그 시대에 대한 관조와 사건의 나열만이 존재할 뿐이다. 이 책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메세지와 줄거리가 눈에 그려질 정도라 내가 이 책을 이전에 읽었던가, 하다가도 출간일을 확인하고는 아연해진다. 한국 소설은 이젠 산업화와 근대화와 관련된 내용이 아니면 책을 쓸 주제가 없는건가? 라고 생각될 정도이다. 뻔하디 뻔한 그 시대 4-60대의 끝없는 한탄을 들어줄 여력이 이제 나에겐 더이상 남아있지 않다. 내가 한국 소설을 점점 멀리하게 되는 이유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책이었다.
3. 2016 부산비엔날레
이번 비엔날레를 통해 '아방가르드'는 나와 맞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았다. 예술가 특유의 감성을 이해하기엔 난 너무나도 보통 감성의 소유자인가 보다. 오히려 곁가지로 본 공간 전시가 훨씬 좋았는데 난잡하고 어지러웠던 마음이 안정되는 느낌이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길, 창밖에 내리는 비로 적서져 초록빛을 띠는 야외정원이 싱그러웠다.
4. 왕비의 잔치
공연을 감상하기 전에 가졌던 기대치나 예상과는 달리 의외로 즐거웠던 공연. 화려한 색감의 의복들과 신명나는 음악들로 인해 마치 왕비의 혼례식에 참여한 백성의 기분으로 잔치를 즐기고 온 것 같다. 하늘하늘한 복장에 우아한 손짓들의 무용수들이 마치 선녀들처럼 아리따워 나도 모르게 참 곱네, 라고 읊조렸다. 무용도 좋았지만 개인적으로는 국악 파트가 더 좋았는데 사물놀이패의 무대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역시 한국인에겐 우리네 가락이 최고지, 쾌지나칭칭나네~ 평일 저녁이라 그런지 대부분의 관객이 중장년층이었는데 앞으로 더욱 다양한 연령층이 관람하는 공연이 되길 바라며.
5. 재즈 연주회
비 내린 뒤의 차갑고 깨끗한 공기 중에 울려퍼지는 색소폰 음률이 너무너무너무 좋았던 공연. 색소폰 소리를 이토록 가까이서 듣게 된 건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금속성이 주는 특유의 날카로우면서도 역동적인 음들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폐공장이라는 특수한 공간이 선사해주는 비일상적인 분위기가 이 연주회를 매력적으로 만든 가장 큰 요소였다. 구슬땀을 흘리며 열정적으로 색소폰과 키보드를 연주하는 아티스트들에게 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9월의 마지막 날을 좋은 음악과 좋은 이와 함께 할 수 있어 행운이었다.